김점석

폰데 다리 밑 조개 맛을 아시는가?

충무대교 밑 조개잡이 24년 김점석

꼬리뼈를 찧다

"6시30분이나 되면 나와 보시오. 겨울은 해가 늦게 떠서 7시나 돼야 배가 나가요." 여름엔 5시부터 조업에 나서는 그에겐 7시는 분명 늦은 시각이지만 9시 출근에도 지각을 밥 먹듯 하는 나로선 때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없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 꽤를 낸다는 게 밤을 새는 것이었다. 6시도 못돼 봉평동 '마이웨이' 앞에 나가 연푸른 가로등 아래 아직 잠을 깨지 않은 그의 배를 카메라에 담고 있으려니 장화에 형광 줄무늬가 있는 작업용 점퍼를 입은 그가 인사를 한다.

"아직은 못 나가요. 뭐 보이는 게 있어야 말이지요. 우선 옷부터 갈이입고 천천히 나갑시다."

소풍 나온 아이 마냥 상기된 표정을 읽었는지, 그가 서두를 것 없다는 사인을 준다.

그럼에도 어서 배에 오르고 싶은 마음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가 앞치마를 두르고 어깨띠를 매고 나서 "타시요"라고 입을 떼자마자 쪽배로 폴짝 뛰어들었다. 순간 내 몸이 허공을 갈랐다.

"쿵, 악!"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FRP 갑판에 훌러덩 미끄러져 꼬리뼈를 찧고 말았다. 엉덩이 사이에 벌건 숯덩이가 타는 듯하다.

점잖고 근엄한 남의 일터에 날밤까지 새며 까불까불한 호기심만으로 뛰어든댓가를 제대로 받은 것이다. 그는 배 뒷전에 꼼짝없이 앉아 있는 나를 보며 병원부터 가야하지 않겠냐고 몇 번이나 걱정스런 얼굴을 했지만 참는 데까지는 참아보기로 했다. 덕분에 조용하다 못해 잔잔하고 호흡이 긴 이야기들이 오갔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

"나 우로는 인자 다 주거삐고 없어. 내 또래가 제일 오래됬지. 인자 이거 배우는 사람도 없으니 우리가 마지막 조개잡이인 셈이지."

다리 밑에서 당신보다 더 오래 조개잡이를 하신 사람이 있느냐는 물음에 푸념처럼 건너온 대답이다.

외길 인생을 걷는 어르신들을 만날 때마다 이런 소리들을 듣게 되는데,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가않는다. 더구나 김점석 어르신은 이제 환갑을 갓 넘겨 예순둘일 뿐이다.

"요샌 다 낚싯배하려고 하지 바지락 캘려구 안 해. 이거 해서 얼마나 번다고."

주위를 둘러보니 조업을 나온 조개잡이 배가 아직은 우리뿐이다. 전에 봤을 때는 많게는 한 번에 20여 척도 있었는데, 그 배들이 오로지 이 일에만 매달리지는 않는 모양이다. 물살이 빠른 곳에 있는 물속 조개라 호미로 파는 것보단 값을 더 쳐준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1㎏에 2,200원 하는 게요 몇 년째 시세다. 새벽부터 오후까지, 볼일도 배에서 볼 정도로 꼼짝없이 갇혀 온 힘을 다 써봐야40㎏ 정도 잡힌다고 하니 조금 야박한 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의 말로는 "중간상 좋은 일 다시키는 일"이란다. 오후 4시쯤 현장에 나와 조업을 마친 배가 돌아오기만 을 기다리는 도매상을 두고 하는 말인 듯 싶다.

"하긴 중간상도 먹고 살아야지. 조개 모아야 해, 씻어야 해, 새벽 2시에 출발해서 4시까진 마산 경매시장에 닿아야지. 세상에 공짜는 없어."

경매시장에선 그가 잡은 조개를 최고로 알아줘 고된 일에도 힘이 실린단다. 마산서 경매꾼이 제일 먼저 묻는 말이"통영 폰데 다리 밑에 조갭니까?"라니 유명세가 예사가 아닌 모양이다. 조개의 맛을 물으니 돈 이야기를 하다 살짝 찡그려졌던 얼굴이 금세 환해진다.

"국을 끼리도 맛나고 너물에 넣어도 해물탕에 넣어도 그렇게 야들야들 맛날 수가 없어. 이따가 조개를 좀 줄 테니 낼 아즉에 국 끼리서 먹어보면 알거야. 물 속 조개는 물 밖 조개보다 훨씬 깨끗해."

  • 새벽 6시, 주인을 기다리는 배

    ▲ 새벽 6시, 주인을 기다리는 배

  • 새벽 7시, 조업을 준비중인 김점석 씨

    ▲ 새벽 7시, 조업을 준비중인 김점석 씨

  • 조개잡이

    ▲ 조개잡이


오염과 매립, 그 어두운 그림자

수심 6m가 넘는 바다에 대나무 갈쿠리를 넣어 바다를 긁는 일을 그는 밭갈이에 비유한다. 밭도 놀리면 못쓰게 되듯, 갈쿠리로 바다 속 개펄을 긁어줘야 조개도 많이 나고 싱싱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그냥 넘겨서는 안 될 지혜가 하나 더 있다. 이곳 조개잡이들이 쓰는 모든 갈쿠리들의 뼈대와 뼈대 사이의 간격이다. 작은 바지락은 빠져나갈 수 있게 틈을 벌려놓지 않았다면 폰데굴 옆 조개잡이는 벌써 끝났을 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지속가능한 어법이다.

그렇다고 해도 마냥 태평세월일 수는 없다.

"조선소 근처 바다는 벌써 다 죽어. 인자는 등대 쪽도 안 잽히는 걸"하며 뱉는 말에는 바다의 땅을 좁혀오는 어두운 그림자에 대한 두려움이 섞여 있다. 이건 조개잡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잠수배, 해녀배 등 갖가지 모양으로 조업을 하는 모두가 같은 처지다. 이들이 주로 조업을 하는 곳은 해양과학대 앞에서 공주섬까지였다. 항만이라 어촌계가 없으니 따로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해양경찰과 항만청의 단속을 피해 다녀야 한다. 이곳을 주름 잡았던 배들이 요즘엔 충무교 아래로만 몰린다.

물살 덕에 오염이 덜 되었고, 맛이 좋기도 하지만 다른 데는 여기만큼 잘 잡히지 않기 때문.

다리 밑에도 사정은 변하고 있어서 재작년까지만 해도 제법 잡히던 개조개나 개불을 요즘엔 통 구경을 할 수 없다.

조개잡이를 비롯해 이곳을 쭉 지켜온 많은 이들은 매립 때문에 조류가 바뀌어 그런 것으로 보고 있지만, 매립지가 갯벌이 가진 정화기능까지 덮어버린 탓도있다. 하루 100㎏이나 캐서 자식 둘 한 해 대학비용 3천만 원을 빚 하나 안 얹고 대었던 일이 이제는 김점석에게도 과거로만 남게 되었다.


동지섣달, 대나무를 베다

"그물공장을 다니다 이 일을 배웠어. 처음엔 남의 배를 얻어 탔지. 공짜로 탈 수야 없으니깐 가끔 내가 잡은 걸 배 주인에게 좀 보태주기도 했지. 그래도 이 일 배우고 나선 남의 집에 돈 빌리러 안 가도 되니깐 그렇게 좋더라고."

얼핏 보기엔 갈쿠리로 바닥을 긁어 퍼 올려 조개만 추려내면 끝인 일을 '배웠다'고 표현하니 도대체 무얼 배웠나 싶었다. 하지만 갈쿠리 이빨을 똑바로 넣지 않으면 갈쿠리도 사람도 "돌아지삐고, "대나무와 갈쿠리를 연결하는 것도 3, 4년은 배워야 제대로 묶을 수 있다고 한다. 뿐인가. "대나무는 어디서 사세요?"라고 별 생각 없이 물었다가 "사긴 뭘 사. 용화사고 인평동이고 대가 천지인데 거기서 캐오면 되지!"하는 면박을 들었다. 젊은 사람이 아낄 생각은 안한다는 핀잔이 섞인 것이다.

대나무는 동지섣달에 베러 간다. 설 쇠면 대나무에 물이 올라 연해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집에 대여섯 개의 대나무가 여분으로 있지만 이 때가 아니면 좋은 대나무를 구하기 어려우니 곧 캐러 나설 것이라 한다. 캐온 것은 불에 서너 시간을 구워 똑바르게 편다.

"세상에 똑 바른 대나무는 없어!"서다. 그런 다음 이것을 찬물에 식힌다. 그래야 대나무가 여물어진다. 이렇게 곧고 여물어진 대나무 2개를 묶는 데만도 또 2시간이 든다. 배에 오르지 않고도 품을 파는 일은 또 있다. 이 대나무를 받치느라 오른쪽 가슴에 덧대는 것도 그가 직접 만든 것이다. 해녀들의 잠수복에 썼던 고무를 방수 천 안에 넣고 바느질을 하고, 그 위에 청테이프를 붙였다. 하루 수백 번도 더 대나무를 오르내려야 하니 청 테이프가 아니면 방수 천이고 옷이고 몸이고 견딜 재간이 없는 것이다.

스테인리스로 만든 갈쿠리도 천년만년 쓰는 게 아니다. 이빨은 닳기 마련이라 1년에 한 번은 갈아야 하는데, 지금 쓰는 것도 낼모레 성냥깐을 직접 찾아야 한다. 조개틀도 10년 전에 25만 원이나 주고 각별히 주문 제작한 것인데 교체는 둘째 치고 지금은 이렇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은게 더 걱정이다.


"안 힘든 일이 어디 있어"

"10시네, 인제 간식 좀 묵자. 6시에 아침을 먹으니깐 이때쯤이면 배가 고파"

어디 시계탑이 있는 것도 아닌데 10시인 걸 어떻게 알았냐니깐 막 항구를 빠져 나오는 제승당행 여객선을 가리킨다. 제각각의 시각에 출항하고 입항하는 여객선뿐 아니라 해녀배들이 나가면 8시고 잠수배가 작업하러 오면 9시고, 누구네 배가 몇 시쯤 올 거라고 맞추기도 한다. 쪽배 위에서 혼자 매일 10시간을 보내다보면 이렇게 도인이 되나 싶다.

간식이라고 해봐야 롤 케이크를 흉내 낸 빵과 요구르트가 전부다. 그걸 또 나와 함께 나눠 먹자고 하니 미안해질 따름이다. 점심은 어떤가 궁금해 미리 보여 달라고하자 컵라면 하나와 김치가 든 도시락 통을 꺼내 보인다. 이걸 먹고 어떻게 힘을 쓸까, 갈쿠리를 직접 물에 담그고 긁어보니 꿈쩍도 않는다.

다 요령이 있겠지만 힘이 예사로 드는 게 아닐 텐데 24년 세월을 이렇게 버텨왔단 말인가.

"안 힘든 일이 어디 있어. 월급쟁이가 아니어서 매일 돈을 만지니 애들 키우기도 좋았고, 돈 쓰기도 좋았지. 목돈 만드는 기 어려워 탈이지."

10년 전,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나무배를 장만했을 때의 희열을"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지"라는 한 마디로만 압축할 수 있을까. 그 앞뒤로 이어졌을 자신과의 싸움의 흔적이 4년 전 새로 장만했다는 FRP 배에도 여기저기 묻어있다. 그 중 눈이 가는 게 네모 칸에 꼭 맞게 들어가 있는 주전자다. 평소엔 라면 국물 같은 걸 끓이지만 겨울엔 그의 언 손을 녹일 귀한 물난로가 되어 준다. 추운 겨울날이면 배는 온통 얼음이고 대나무엔 고드름이 낄 정도니 그 대를 잡는 손이 얼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애린 손을 뜨거운 물에 녹였다 얼렸다를 반복하며 그가 바란 건 여느 부모의 바람과 다르지 않다.

"일곱 물에서 열한 물까지는 물이 깊어서 일을 할 수가 없어. 할 수 있을 때 벌어놓으려고 했지. 애들도 다 자리잡았겠다, 인제는 너무 추우면 안 나올려구 해. 조개도 얼마 안 잡히니깐 생고생 안하려는 거지."

허나 멋쩍게 웃음이 섞인걸 보면 빈말일 가능성이 크다. 바람이 매서워 코끝이 발개진 오늘만도 그는 연신"날이 따셔서 좋다"고 한 데다, 치울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주전자도 라면 국물만 끓이기엔 지나치게 크기 때문이다.

일 마칠 때까지 함께 하리라 했던 다짐은 점심도 되기 전에 꺾여버리고 말았다. 새벽에 다친 꼬리뼈가 너무 아파 더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배를 옮기려 시동 켜는 순간을 기다렸다. 뭍에 좀 내려달라 했더니 병원부터 꼭 가라고 다시금 타이른다. 병원쪽 가는 차타기 빠른 곳으로 배를 대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고 엉거주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돌리니 그는 어느새 또 반짝이는 물비늘 위에 검은 실루엣으로 남았다. 출근길에 버스 창으로 보았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풍경이었다.

  • 점심도시락(왼쪽) 및 간식을 먹는 모습

    ▲ 점심도시락(왼쪽) 및 간식을 먹는 모습

  • 갈쿠리 정리중인 김점석 씨

    ▲ 갈쿠리 정리중인 김점석 씨

  • 고동 조개잡이를 하는 모습

    ▲ 고동 조개잡이를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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