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통영시 충렬1길 76-34 (문화동). ‘서문고개’의 뚝지먼당으로 가는 길에 박경리의 생가가 있다.
여기에서 뚝지먼당이란 명정동과 문화동을 경계짓는 고지대인 지금의 배수지일대다. 옛날 이곳에 독사(纛祠)가 있던 언덕 위라 하여 ‘뚝지(纛址)먼당’, ‘쭉지먼댕이’라 불린다. 즉 독(纛·군중의 대장 앞에 세우는 삼지창에 붉은 깃털이 많이 달린 기)이 있던 터(址)를 말함인데 독지가 둑지, 뚝지로 불리었다. 경상도에는 흔히 팔을 폴로, 팥이 폿으로, 파리를 포리로 발음하듯이 독사(纛祠)가 둑사, 뚝사로 불리워졌고 그곳에는 군영과 장군의 상징인 이 독기를 걸어놓고 독신을 수호신으로 모시며, 춘추로 통제사가 직접 군영과 백성들의 무운 장구를 지내는 제사를 독제(纛祭), 그리고 독신을 모신 사당을 독사(纛祠) 또는 독소(纛所)라 하였다.
서문고개는 소설 『김약국의 딸들』의 무대이기에 표지석이 서 있고 그 표지석이 있는 골목 안 끄트머리 오른쪽 건물이 박경리의 생가다.
박경리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상세히 밝힌 시가 한 편 있다.
“나의 생년월일은 / 1926년 음력 10월 28일이다 / 한국 나이로 하자면 / 아버지가 18세 어머니는 22세에 / 나를 낳았다 // 가난했던 외가였지만 / 혼인한지 사오 년이 되도록 / 아이를 낳지 못하는 딸자식을 근심하여 / 이웃에 사는 도사 / 그러니까 축지법을 쓴다는 / 황당한 소문이 있는 도사에게 /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 외할머니가 부탁하여 / 덤불山祭를 올렸다는 것인데 / 그것이 영험으로 나타났던지 / 바람 잡아 나간 아버지가 / 섣달 그믐 날 난데없이 나타났고 / 어머니는, 어머니의 말을 빌리자면 / 두 눈이 눈깔사탕같이 파아랗고 / 몸이 하얀 용이 나타난 꿈 / 그것이 태몽이었다는 것이다 / 하여 어머니도 주위사람도 / 아들이 태어날 것을 믿었다고 했다 // 고된 시집살이였던 그때 / 어머니는 / 어른들 저녁 차림을 하고 있었던 참에 / 갑자기 산기가 있어 / 마침 그날 도정해다 놓은 쌀가마에서 / 쌀을 퍼 담고 / 친정으로 오자마자 나를 순산했으며 / 술시라던가 해시라던가 / 아무튼 초저녁이었다는 것이다 / 계집아이의 띠가 / 호랑이라는 것도 그렇거니와 / 대낮도 아니고 새벽녘도 아니고 / 한참 호랑이가 용을 쓰는 / 초저녁이라 / 그 팔자가 셀 것을 말해 뭐하냐 / 어릴 적에 나는 / 그 말을 종종 듣기도 했고 / 점쟁이는 팔자가 세니 / 후취로 시집보내라 그랬다는 것이다 / 그러나 어머니는 / 딸이라 섭섭해 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 나를 낳고 젖몸살을 앓은 어머니가 / 젖꼭지를 아이에게 물릴 때마다 /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는 것을 본 / 나이 어린 신랑이 / 신통하게도 / 젖꼭지랑 젖병을 사들고 왔더라는 것이다 / 어머니가 유일하게 / 아버지로부터 받은 애정인 셈이다 // 그러저러한 사연을 지니고 / 다른 아이들과 별반 다를 것 없이 / 나는 세상에 떨어졌던 것이다 / 하나 사족을 달자면 / 용을 본 것이 태몽인데 / 공교롭게도 / 어머니의 이름이 용수(龍守)였다 / 본명은 선이라 했으나 / 어릴 적에 죽은 바로 위의 오빠 / 그의 이름이 용수였고 / 어떻게 된 일인지 / 호적상으로 어머니가 / 물려받게 된 것이라 했다 / 땅문서 집문서의 소유주 이름은 물론 / 문패에도 어머니의 이름은 / 김용수(金龍守)였다”
박경리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나의 출생」에서
이 시를 읽으면 박경리의 가족사와 태어난 배경을 소상히 알 수 있다. 나이 어린 아버지는 바람기가 많아 딴 살림을 차리고 용꿈을 꾸고 난 후 태어난 박경리는 태몽대로 한국문학사의 거목이 됨을 알 수 있게 하는 시다.
박경리가 태어난 집 외양은 수리를 한 것 같아 보인다. 현재 다른 사람이 살고 있어 집 내부는 출입이 곤란하다. 통영시에서 매입하여 대 문학가의 생가를 복원하리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