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매력을 보고, 즐기다.
통영의 매력을 보고, 즐기다.
남망산공원 입구 오른쪽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남망산야외조각공원과 코발트빛 통영앞바다를 함께 감상하며 몇 발을 더 떼면 왼쪽으로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시민문화회관이다. 구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을 조금 지나면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초정시비로 가는 길의 갈림길이 나온다. 동백꽃과 여러 종류의 수목을 배경 삼아 청마 유치환의 대표시라 할 수 있는 시비가 깃발처럼 서 있다. 보기에 따라 깃발 같기도 하고 떠가는 구름 같기도 하다. 그가 늘 오르내리며 시심을 키웠던 이 언덕에 충무청년회의소가 1974년 9월에 세운 것이다. 시인이 1967년 2월에 돌아갔으니 그의 사후 7년 만에 세운 시비이다. 통영 사람들의 그에 대한 사랑의 농도를 알만하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n...
남망산공원 입구 오른쪽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남망산야외조각공원과 코발트빛 통영앞바다를 함께 감상하며 몇 발을 더 떼면 왼쪽으로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시민문화회관이다. 구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을 조금 지나면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과 초정시비로 가는 길의 갈림길이 나온다.
동백꽃과 여러 종류의 수목을 배경 삼아 청마 유치환의 대표시라 할 수 있는 <깃발>시비가 깃발처럼 서 있다. 보기에 따라 깃발 같기도 하고 떠가는 구름 같기도 하다. 그가 늘 오르내리며 시심을 키웠던 이 언덕에 충무청년회의소가 1974년 9월에 세운 것이다. 시인이 1967년 2월에 돌아갔으니 그의 사후 7년 만에 세운 시비이다. 통영 사람들의 그에 대한 사랑의 농도를 알만하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 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위대한 민족시인 청마 유치환 선생은 1908년 이 고장에 태어나 우리 민족사의 가장 모진 수난과 격동의 시대를 살아갔습니다. 그의 인생은 오직 한 인간이 소리치는 내면세계에 깊이 침잠하였고 인내와 성실을 쫒아 끝내 이를 빛나는 그의 언어예술에 새기는 작업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의지와 애정을 한 몸에 지녀 늘 젊음으로 인생을 치달려간 청마, 때로는 그칠 줄 모르는 정열의 파도로 강렬하고 빛나는 사상의 기폭으로 사랑과 나라와 겨레의 오직 밝고 곧은 앞날을 기원해 마지않던 청마, 그의 고독한 절규는「내 눈을 뽑아 북악의 산성에 높이 걸어 행패하는 망국의 이리들과 불의의 끝장을 보리라」고 질타하였습니다. 이는 정녕 겨레의 가슴에 영원히 흐를 뜨거운 사랑이며 이 사랑을 근원으로 그의 예술행위의 창조는 이루어졌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이에 연유하여 사랑과 봉사와 우정의 기치 아래 젊음을 사는 저희 충무청년회의소 사십여 회우들은 뜻을 모아 청마의 고장이며 청마 시심의 요람인 이 동산에 돌을 깎고 시를 새겨 아름다운 그의 시혼을 추모코자 합니다. 1974년 9월 15일 충무청년회의소”
단체의 명의로 시비를 세워 뒷면의 비문을 누가 지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청마의 시인다움을 잘 표현한 명문이다.
잘 알다시피 청마 유치환은 1908년 통영에서 태어나 1931년 《문예월간》에 <정적(靜寂)>으로 등단하여 1936년《조선문단》에 <깃발>을 발표. 서정주, 김동리와 함께 활동한 생명파의 대표 작가이다.《청마시집(1940)》《울릉도(1948)》《보병과 더불어(1951)》자작시 해설집《구름에 그린다(1959)》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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