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향기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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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소개

통영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이자 랜드마크라 할 만한곳이 충렬사다. 토영 이야~~길 1코스의 중간점도 이곳이고 통영의 생활을 이야기꺼리로 삼고 있는 영화 <하!하!하!>에서 문소리가 해설사로 근무하던 곳도 바로 여기다. 이순신장군의 위훈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나라에서 세운 사당. 통영의 역사와 문화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여기 충렬사다.

충렬사에 들어서면 충렬사의 역사와 함께 해온 동백나무를 먼저 만난다. 동백나무의 수령은 300여년. 이 나무에 꽃이 필 무렵이면 풍신제를 지내며, 바다의 평안을 빌었다 한다. 동백나무 앞에는 강한루라 씌어진 누각이 있고, 누각 아래를 지나야 사당 앞에 설 수 있다. 시인묵객들이 노닐었을 법한 이름의 누각이 사당 앞에 있다니? 의아함이 먼저 일지만, 그 내력은 아주 뜻이 깊다.

'충무공의 충정이 되새겨 있는 강한루'
본래 강한이란 중국에 있는 요충지 이름이다. 주나라 때 그곳 강한에서 적들을 물리치고 나라의 우환을 덜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해 강한루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곳에서 이름난 시인들이 동백과 후원의 죽림을 시제삼아 충무공의 충정을 되새겼다. 경내에는 충무공의 위패를 모신 정침을 비롯해 내삼문, 중문, 외삼문, 정문, 홍살문 등 다섯개의 문과 강한루, 충무공기념관이 있다. 특히 기념관에는 이충무공이 전사한 후 명나라에서 보낸 귀도, 참도, 영패, 곡나팔, 깃발 등 8가지 선물이 있다.

이 명나라 선물은 아산 현충사를 지으면서 그곳으로 옮겨가려던 것을 통영시민들이 횃불을 들고 몇날 며칠을 시위하면서 지켜낸 진품이라 한다.

충렬사에서 오른쪽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면 움푹들어간 골짜기에 커다란 우물 두 개가 있다. 명정샘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데 규모가 상당히 크다. 정당골에 있다하여 정담샘으로도 불린다. 이 샘에는 재미있는 유래가 전해진다. 1670년 제51대 김경 통제사 때 우물을 파고 보니 물이 탁하고 말라서 쓸 수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바로 옆에 하나를 더 파 보았는데 신기하게도 물이 맑고 수량이 많더라는 거다.

뿐만 아니라 처음에 팠던 우물까지 똑같이 좋아 졌다는 것이다. 이후 두 개의 우물 중 위의 우물을 일정(日井)이라고 해 이 충무공의 향사에 사용하고, 아래 우물인 월정(月井)은 마을의 공동우물로 사용했다. 또한 더럽고 추한 것은 물론이고 상여조차 근처를 못 오게 했다.

이처럼 귀한 샘인 탓에 한때는 두 우물위에 팔각정을 세워 보존코자 하였더니 물이 변질되어 다시 걷어내고 지붕을 씌우지 않고 있다. 두 개의 우물 아래에는 길다랗게 파놓은 발래터가 있다. 주변의 아낙들이 잠시나마 외간사람들을 만나고 수다를 떨던 자리인 셈이다.

여기에는 기억에 남을 만한 실화가 전해진다. 근간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분 중에 김영한 여사가 있다. 수백억을 호가하던 고급요정 삼청각을 법정스님께 시주한 그 분이다.

김영한 여사가 평생을 기다리며 사랑했던 사람이 시인 백석이다. 그러나 백석시인이 첫눈에 반해 사랑했던 여인이 따로 있었는데, 바로 이곳 통영 명정골 객주집의 딸이었다. 백석은 그를 만나러 이곳 명정샘까지 찾아왔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천희라는 여인이 바로 이곳 명정골의 여인이었다는 얘기다. 이루어지지 않는 슬픈 사랑 이야기야 흔하디 흔하지만, 김영한 여사의 사연이 오버랩되면서 마음이 더욱 짠해진다.

명점샘에서 길을 건너면 신호등 바로 옆에 큰 은행나무가 서 있고, 안쪽에는 '함안조씨 정려문'이 있다. 고종 20년에 왕명으로 세워졌다 하고, 증참판 김귀반의 아내이자 오위장 김시진의 어머니였던 함안조씨의 효성과 정성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고 씌여 있다. 정려문 앞에서 큰 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가면 왼족 서피랑으로 오르는 길 입구에 통제사 순찰길이 나온다. 서피랑으로 오르는 49계단까지 이어지는데, 동피랑에서 보던 바다풍경이 여기서도 펼쳐진다.

길 건너 반대편에는 통영에서 가장 먼저 전깃불이 들어왔다는 통영전기주식회사 자리가 있다. 통영사람들은 이곳을 <전기불터>라 부른다. 옆으로 잠시 살펴보고 큰길을 걷다가 통영적십자병원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통영의 새로운 명물 오미사 꿀빵 집이 나온다. 통영 꿀빵의 원조집이 바로 여기다. 경주에 황남빵이 유명하듯 통영에는 바로 이곳 오미사 꿀빵이 유명하다.

오미사란 어떤 뜻일까? 1960년대 초 가게도 상호도 없이 집 앞 가판에서 배급받은 밀가루로 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지나가던 여고생들이 맛을 보고 입소문을 내면서 서로 알릴 방법이 없으니까 짚옆의 세탁소 이름인 '오미사' 이름을 붙여 부르게 되었다. 즉 오미사 앞에서 파는 빵이라는 얘기였다.

그후 세탁소 오미사는 없어지고 자연스레 꿀빵집이 그 간판 그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좋은 이름 다 두고 오미사 꿀빵을 고집하는 데는 바로 이같은 고된 시절을 회상하며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하자는 의미도 있고 손님들의 추억이 배어있는 빵으로 남아있길 바란다는 뜻에서 그저 손님들이 불러주던 이름 그대로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단다.

꿀빵 하나에 눈물 한줄기를 떨구는 얘기를 듣고나서 도천동 거리를 10여분 쯤 걸으면 윤이상거리에 위치한 옛 통영군청 건물이 나선다. 지금은 <페스티벌 하우스>로 사용되면서 통영국제음악제를 주관하고 있었는데, 조만간 다시 통영시립박물관으로 재탄생할 장소다. 운동장에서 잠시 쉬었다.

큰길로 나서 잠시 내려가면 통영이 낳은 천재음악가 윤이상을 만난다.

도천테마공원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에는 윤이상기념관과 야외공연장, 쉼터 등을 갖춰놓고 있다. 기념관에는 생전에 사용하던 옷, 생활용품, 육필원고 등이 보존돼 있는데, 그중 눈길을 끄는 것은 북한의 조각가가 만들어 통영으로 옮겨온 '윤이상의 흉상'조각품이다.

윤이상이 한국에서 한동안 배척당했던 원인이기도 했던 그 이유가 여기서 느껴진다. 야외공연장 주변에는 바다를 상징하는 물길이 나 있어 이색적이면서도 온화한 느낌을 준다.

도천테마공원 앞 사거리에서 조금만 더 가면 해저터널이다. 1932년 완성된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이다. 통영의 대표적인 명소 가운데 하나인 이곳은 일제가 해저터널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원래 해저터널이 있는 이곳 당동과 건너편 미륵도는 사람이 다닐 정도로 수심이 얕았다.

그런데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이순신 수군에 쫒겨 도망가면서 수심이 얕은 이곳을 지나다 배가 바닥에 걸려 도망가지 못하고 몰살당했다. 일제는 임진왜란때 많은 왜군들이 죽임을 당한 이곳을 짓밟지 못하도록 물밑으로 사람들을 왕래시키기 위해 해저터널을 팠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현재로서는 바다 밑길(터널), 뱃길, 충무교·통영대교의 다랏길 등 한국 유일의 3중 교통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 됐다.

해저터널이 보이는 언덕배기에는 또 다른 유서 깊은 사당이 있는데 바로 착량묘다. 아마도 전국에서 이름난 사당을 다 모아도 착량묘 하나 만큼 뜻 깊은 곳이 없으리라. 보통의 사당은 나라에서 지어주거나 그 집안에서 직접 세운다. 그러나 이 착량묘는 이순신장군을 기려 향토민들과 수군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지었다. 진심어린 존경에서 지어진 사당이라는 얘기다. 뿐만아니라 이순신을 기리는 사당 중 가장 먼저 세워진 것이 바로 이 착량묘이기도 하다. 겉보기만 화려한 여느 사당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곳에는 전설마저도 이순신과 연관되어 있다.

한산대첩 때 왜군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던 곳이라 귀신의 출몰이 잦았는데, 착량묘를 세운 후로는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전설이다.

착량묘 앞에서 왼쪽을 보면 멀리로 남망산이 보인다. 그곳을 바라보며 바닷길을 걷는다. 건너편에는 미륵도가 있고 뒤로는 통영운하가 있다. 앞에는 통영항과 남망산 동피랑이 펼쳐져 있다. 정말 걷기 좋은 길이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면 이 길은 더욱 분위기 있다. 바다 건너편 미륵도를 감상하며 해안길을 걷다보면 상큼한 바다내음을 따라 항구를 나는 갈매기의 군무를 감상할 수 있다. 시 한편이 절로 떠오르기도 한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앉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통영의 시인 유치환의 시다. 바닷바람을 쐬며 15분여를 걸으면 통영항 여객터미널과 서호시장에 닿는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바다를 매립해 세운 곳이다. 새로 만든 땅이라 하여 새터시장으로도 불린다. 문화마당앞에 있는 중앙시장과 더불어 통영의 수산물을 양분하는 곳이다. 그 만큼 통영사람들의 삶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호시장을 가로질러 나가면 중앙도로다. 이 길을 따라 오른편으로 잠시만가면 길가에 김춘수 동상과 시비가 서 있고 길 건너에는 초정거리가 있다.

입구바닥에 항남1번가 라는 동판이 박혀있다. 지금은 패션거리에 가깝지만, 옛날에는 진정한 예술의 거리였다. 초정 김상옥이 살던 집이 여기에 있고, 시조시인 탁상수의 생가도 있으며, 시조동인지 '참새'가 발간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초정거리는 통영 근대문학의 효시같은 곳이다.

바로위에 있는 청마거리와 이어져 통영문화골목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초정의 시가 벽화처럼 박혀있는 초정거리를 빠져나와 길을 건너면 골목 사이로 바다가 찰랑거린다. 문화마당앞으로 나가는 골목이다. 골목끝자락에는 화가 이중섭이 6.25당시 피난 와서 그림을 그리던 곳이 있다.

골방이 싫을 때면 바로 앞의 바닷가로 달려나가 마지막 손질을 했을 것이다. 문화마당 한 켠에 그가 사색하며 거닐었던 바닷가에 그의 그림와 사연이 새겨져 있다. 그림너머로 형형색색의 깃발을 단 어선들이 하릴없이 흔들거리고 멀리 미륵산에는 하얀 구름 한덩이가 해서픈 웃음을 남기고 거제도로 넘어간다.

토영이야길 1코스는 이처럼 통영시내를 한바퀴 도는 코스다.

출발한 곳으로 되돌아오는 코스여서 차를 염려할 필요가 없어 좋다. 또, 어디서 멈추더라도 이곳 문화마당까지는 걸어서 1-20분 거리여서 무리없이 걷다가 쉬면서 여유분까지만 돌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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