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 (尹伊桑, 1917.09.17)

경력
1917. 09. 17. 경남 통영 출생
1925. 통영 호당서재에서 교육을 받음
1926 ~ 1931. 통영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고, 22회로 졸업.
5학년 때(1930년) 처음으로 작곡을 시도.
1931.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통영의 상업학원(통영 협성상업강습소)에 입학.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이웃 청년으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움.
1934 ~ 1935.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음악을 배우기 위해 서울로 상경.
프란츠 에케르트의 한국인 제자로부터 화성학 교육을 받음.
국립도서관을 방문하며 독학으로 서양의 고전음악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파울 힌데미트의 음악을 공부함.
1935 ~ 1936. 상업학교를 다니면서 음악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조건부 허락을 얻어 일본으로 건너감.
오사카의 상업학교에 등록하고, '무조적 요소를 지닌 현악사중주'를 비롯한 몇 개의 작품을 선보이며 오사카 음악원에 입학.
그곳에서 작곡, 음악이론, 첼로를 배움.
1937. 첫 동요집 <목동의 노래>를 작곡하여 홍난파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음.
1937. 통영 부근 '화양학원(오늘의 화양초등학교)'의 교사로 재직
1939 ~ 1940.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의 토지모로 이케노우치 에게 대위법과 작곡을 배움.
1941. 이 무렵에 일본의 '매일신문 음악콩쿠르'에 응모하기 위하여 <첼로협주곡>을 작곡.
그러나 계획을 포기하고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에 귀향.
1944 ~ 1945. 윤이상은 "가택수사 결과 우리말로 작곡한 가곡들이 발견되어 불온한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2개월간 수감됨.
미곡창고 지배인의 신분보장으로 풀려나지만, 항상 감시를 당하고 다시 체포될 것이라는 소식에 야밤에 탈출하여 서울에 당도함.
출판사에 취직.
결핵으로 인해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하고 여기에서 해방을 맞이함.
1945. 해방 후 귀향하여 '통영문화협회'회원으로 활동.
부산 국제신보에 단편소설「탈출」연재.
1947. 정윤주, 최갑생, 최상천과 함께 '통영현악 사중주단'을 조직하여 첼로 주자로 활동.
사중주단원은 곧 이어 탁혁수(제1 바이올린), 최모(제2 바이올린), 최기영(비올라), 윤이상(첼로)로 개편됨.
1948 ~ 1949. 통영의 여자고등학교 음악교사로 재직.
해방 후 통영여고 시절까지 유치환, 김상옥 등과 함께 통영여고, 통영고교, 욕지중교 외에 다수의 초등학교 교가를 작곡함.
1950 ~ 1952. 부산에서 그동안 작곡했던 가곡<편지>(1941), <그네>(1947), <고풍의상> (1948), <달무리>(1948), <나그네>(1948)를 모아 '『달무리』라는 제목으로 가곡집 출간.
1950. 1월에 같은 학교 국어교사 이수자와 결혼, 같은 해 11월에 첫딸 '정' 출생.
부산대학에서 서양음악사 강의.
'전시작곡가협회'를 조직하고, 사무국장으로 활동.
유치진 극본/연출의 <처용의 노래>를 작곡하여 국립극장에서 공연
1952. 이은상 작시 <낙동강>에 곡을 붙인 전시가요 작곡.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아동 문학가이자 동요작가인 김영일과 함께 70여 편의 동요 작곡.
이 곡들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의 음악교과서(문교부인정 국민학교 『새음악』) 6권과 전시 초등학교 노래책 『소년기마대』1권에 수록됨
1953. <첼로 소나타 제 1번> 작곡 및 초연.
1954. 아들 '우경' 출생. 「악계구상의 제문제」를 '문예' 신춘호 제5권 제1호에 발표.
1955. <현악 사중주곡 1번>과 <피아노 삼중주곡>으로 작곡가로는 최초로 제5회 '서울시 문화상' 수상.
1956. 6월에 파리음악원으로 유학. 피에르 르벨 (Pierre Revel)에게서 음악 이론을, 토니 오뱅 (Tony Aubin) 에게서 작곡을 배움.
1957. 정윤주, 최갑생, 최상천과 함께 '통영현악 사중주단'을 조직 8월에 독일의 서베를린으로 건너가 베를린음악 대학에 입학.
라인하르트 쉬바르츠 쉴링(Reinhard Schwarz-Schilling)에게서 음악 이론을, 쇤베르크의 제자인 요셉 루퍼(Joseph Rufer)에게서 12음 기법을, 그리고 보리스 블라허 (Boris Blacher) 에게서 작곡을 배움.
1958. 서독의 다름슈타트 (Darmstadt) 에서 개최된 현대음악 하기 강습회에 처음으로 참가.
여기에서 슈톡하우젠, 노노, 블레즈, 마르데나, 케이지, 백남준 등을 알게 됨.
1959. 07. 베를린 음악대학을 졸업.
1959. 09. <피아노를 위한 5개의소품 5 Stucke fur Klavier>이 네델란드의 빌트호벤(Bilthoven)의 가우데아무스 음악제에서 입선됨.
뿐만 아니라 실내악곡 <일곱악기를 위한 음악 Musik fur 7 Instrumente>이 다름슈타트의 ‘하기현대음악제’에 초청되어 프랜시스 트레비스 (Francis Travis)의 지휘로 초연되면서 유럽 현대 음악계의 주목을 받음.
현악사중주 3번을 작곡.
이 작품으로 이듬해 국제현대음악제(ISCM)에 초청됨.
1960. <현악사중주 3번>이 6월 15일 쾰른에서 '노박 4중주단'에 의해 초연됨.
경남문화사업협회에서 향토예술과 문화향상에 이바지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제3회 '눌원문화상' 수상자로 윤이상을 선정.
베를린방송국의 위촉작품 관현악곡 <바라>, 함부르크방송국의 위촉작품 대편성 관현악을 위한 <교향악적 정경> 작곡.
1962. 오케스트라 작품 <바라(Bara, 1960)>가 '베를린 라디오방송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지휘: F. Travis)
1963. 북한을 방문.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가사>,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가락>을 발표.
1965. 오라토리오 <오 연꽃속의 진주여(1964)>가 독일 하노버에서 초연(지휘: 프란시스 트라비스 Francis Travis). 오페라 <류퉁의 꿈>이 작곡되고, 같은 해 9월 '베를린 예술 아카데미' 축제주간에 '베를린 오페라단'에 의해 초연됨.(연출: 빈프리드 바우에른파인트 Winfried Bauemfeind, 지휘: 울리히 베더 Urich Weder)
1966. 여름에 두 달간 수학 및 강연 차 도미하여 탱글우드, 아스펜,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뉴욕 등지를 방문.
1966. 10. 독일 도나우에싱엔 (Donaueschingen)에서 <예악Reak>이 에르네스트 부어(Ernest Bour)가 지휘한 '남서독일 방송교향악단' 에 의해 초연.
이 연주의 성공으로 윤이상은 일약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됨.
1967. 06. 17. 한국의 정보요원에 의해 서울로 납치됨.
이른바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윤이상은 부인 과 함께 기소되어 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음.
그의 부인은 7년 형을 선고 받았으나 집행유예로 석방.
윤이상은 1963년3월13일의 제2심에서 15년으로, 1969년 1월의 제3심에서는 10년으로 감형.
1968. 수감 중이던 1967년 10월에 작곡할 수 있는 허가를 받은 윤이상은 오페라 <나비부인>을 2월 5일에 완성.
건강이 악화된 윤이상은 병원으로 이송됨. 이곳에서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율Riul>과 플루트와 오보에를 위한 <영상Image>를 작곡.
1969. 하랄드 쿤츠, 죠르지 리케티, 한스 베르너 헨체,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지그프리드 팔름, 이고르 스트라빈 스키, 오토 클렘페러,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161명에 달하는 세계적 예술가 및 그의 동료 그리고 독일정부의 항의 및 노력으로 윤이상은 석방되고, 2월 말에 베를린으로 돌아옴. 2월23일에는 그의 2부작 오페라 <류퉁의 꿈(1965)>, <나비부인(1967/68)>이 독일의 뉘른베르크에서 초연됨.
1969 ~ 1970. 하노버 음대의 작곡과 강사로 재직.
1971. 06. 20. 오페라 <유령의 사랑Geisterliebe>이 독일 키일(Kiel)에서 초연됨(지휘: 한스 첸더 Hans Zender).
'키일 문화상' 수상. 독일 국적 취득.
1972. 베를린 음악대학의 명예교수로 임명.
1972. 08. 01. 오페라 <심청 Sim Tjong>이 뮌헨에서 개최된 올림픽경기의 문화 행사의 하나로 초연됨
(지휘:볼프강 자발리쉬 Wolfgang Sawallisch. 연출: 균터 레너트 G?nther Rennert).
1973. 미국의 '아스펜(Aspen)' 음악제에 참가. 여기에서 그의 많은 작품들이 연주됨.
1976. 03. 25. 그의 첫번째 협주곡인 첼로협주곡 (Konzert f?r Violoncello und Orchester) 프랑스로양 (Royan)에서 초연.(첼로: 지그프리드 팔름Siegfried Palm, 지휘: 프리드리히 체르하 Friedrich Cerha)
1977. 윤이상과 루이제 린저의 대담을 엮은 책
『상처입은 용: 생과 작품에 대해 작곡가와의 대화( Der verwundete Drache: Dialog ?ber Leben und Werk des Komponisten)』이 독일 피셔(Fischer) 출판사에서 간행됨.
이 책은 이후 일본어 및 한국어로 번역 소개됨.
1977 ~ 1987. 베를린 예술대학의 정교수로 재직.
1979. 오보에, 하프, 비올라를 위한 <소나타 Sonata>가 작곡되어 독일 자아르브뤼켄에서 초연됨.
관현악을 위한 <서주와 추상 Fanfare & Memorial>이 독일 뮨스터에서 초연됨.
1980. 플루트와 하프를 위한 <노벨레테 Novellette> 작곡, 초연됨.
소프라노와 실내앙상블을 위한 <밤이여 나뉘어라 Teile dich, Nacht>가 작곡, 초연됨.
1981. 독일 퀼른에서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가 서부독일 라디오 방송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됨
(지휘: 히로시 와카스기 Hiroshi Wakasugi) 윤이상과 루이제 린저의 대담을 엮은 책『상처입은 용: 생과 작품에 대해 작곡가와의 대화 (Der verwundete Drache: Dialog ?ber Leben und Werk des Komponisten)』이 이토오 나리히코에 의해 일본어로 번역 출간됨.
1982. 제7회 대한민국 음악제에서 이틀간 '윤이상 작곡의 밤'이 공연됨 (9월 2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교향곡 의 밤에서 프랜시스 트래비스의 지휘와 KBS교향악단의 연주로 <서주와 추상 Fanfare & Memorial>, <무악 Muak>, <예악 Reak>, 오보에와 하프, 오케스트라를 위한 <이중협주곡: 견우와 직녀> 등이 연주 되고, 9월25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실내악의 밤에서는 하인츠 홀리거 부부 등이 <낙양 Loyang>, <피리 Piri>, 오보에와 하프, 비올라를 위한 <소나타 Sonata>를 연주함) 이후 남한과 북한에서 윤이상의 작품들이 비정기적으로 연주 소개됨.
1984. 05. 15. 베를린 필하모닉 창단 100주년 기념으로 윤이상의 <교향곡 제 1번>이 초연됨
(지휘: 라인하르 트 페터스 Reinhardt Peters) 평양에서 '윤이상 음악연구소'가 설립됨.
이 연구소 주관으로 '윤이상 음악연구 토론회'가 열리고 '국립교 향악단'이 중심이 되어 매년 ‘윤이상 음악회’가 개최됨. 일본에서 개최된 '제5회 쿠사츠 하기 국제아카데미 및 페스티발' 에 초청됨 - 강연회 및 '윤이상 작품의 밤'이 개최됨.
1985. 독일의 튀빙겐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음.
1986. 10월-11월에 일본과 중국에서 작곡 강습회를 개최함. 실내악곡 <무궁동 Mugung-Dong>, <재회 Rencontre>, <플루트 4중주> 등이 작곡됨. <교향곡 제 4번: 어둠에서 노래하다>이 일본 동경에서 초연됨
1987. 윤이상의 70회 생일 기념으로 뮌헨의 Text und Kritik 출판사가『작곡가 윤이상 (Der Komponist Isang Yun)』이란 제목으로 윤이상 작품에 관한 논문 모음집을 발간.
베를린 75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위촉받은 <교향곡 제5번>이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Dietrich Fischer-Diskau)의 독창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윤이상의 70회 생일인 9월 17일에 초연됨 (지휘: 한스 첸더 Hans Zender) 칸타타 <나의 땅, 나의 조국이여 Mein Land, mein Volk>가 평양에서 북한국립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됨.
1988. '독일연방공화국 대공로훈장'을 독일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Richard von Weiz?cker) 로부터 수여받음.
베를린이 '유럽의 문화도시'로 지정되어, '베를린축제주간' 동안 윤이상의 작품이 공연됨. 플루트와 바이올린을 위한 <환상적 단편 Pezzo fantasioso>. 열 개의 악기를 위한 <거리 Distanzen>, 목관 5중주를 위한 <축제무곡 Festlicher Tanz> 등이 작곡됨.
서울의 한울출판사가 루이제 린저와 윤이상의 대담을 엮은 Der verwundete Drache를 <상처 받은 용>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 (번역: 홍종도)
1989. 실내교향곡 2번 <자유에의 헌정 Den Opfern de Freiheit>, 오보에와 하프를 위한 <외침 Rufe> 작곡. 평양의 '윤이상 음악연구소'에서 『윤이상 음악연구 논문집 I』을 출간
1990. 대편성 관현악단을 위한 <윤곽Konturen>이 독일 브라운슈바이크에서 초연됨, 오보에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초연, <현악사중주 제 5번> 등이 작곡됨.
평양에서 '윤이상관현악단' 발족.
제1회 '범민족 통일음악제'의 준비위원장으로서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의 전통음악연주가들을 북한으로 초청.
10월에 평양에서 개최된 이 음악제에 황병기를 단장으로 하는 '서울 전통음악 연주단'이 참가.
제9차 ‘윤이상 음악회’가 평양에서 개최됨. 12월에 서울에서 개최된 '90년 송년 통일음악제'에 참가를 주저하던 북한 측을 설득하여 음악제를 성사시킴.
1991. 『윤이상의 음악세계 (최성만, 홍은미 번역)』가 한길사에서 간행됨.
3월 평양에서 '윤이상 음악상' 착공.
국제현대음악협회(ISCM)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됨.
<목관 5중주 Blaserquintett>,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Sonata> 작곡.
1993. 03. 평양의 중심부 연평거리에 연건평 1만 7천여 제곱미터 15층 규모의 '윤이상 음악당'이 건립됨.
윤이상 음악당은 2개의 연주홀과 총 200개의 방으로 구성.
1993. 05.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에서 자신의 '철학, 미학, 음향언어 및 작곡 기법'에 대한 공개강좌. 10월 서울에서 열린 '한국페스티발앙상블' 주최 '20세기 음악축제 기간' 중에 윤이상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소개됨.
1994. 클라리넷과 현악사중주를 위한 <5중주>를 비롯한 다수의 실내악곡을 작곡.
1994. 09. '윤이상 음악축제'가 '예음재단' 주최로 서울, 광주, 부산에서 개최, 『나의 길, 나의 음악: 윤이상의 음악 미학과 철학』(윤이상/볼프강 슈파러 저)이 정교철, 양인정 번역으로 도서출판 'HICE'에서 간행됨.
마지막 작품, 교향시 <화염 속의 천사>와 소프라노 여성합창과 독주악기가 수반되는 <에필로그 Epilog> 를 77세 생일인 9월 17일에 완성.
1995. 02. '독일 문화원' 본부가 선정한 '괴테 메달' 수상자로 선정.
1995. 05. 일본 동경에서 그의 마지막 작품인 교향시 <화염 속의 천사 Engel in Flammen>와 <에필로그 Epilog>가 초연됨.
11월3일 16시20분(현지시간).
베를린의 발트 병원에서 향년 78세로 별세.
베를린시 가토우 지역 공동묘지에 안장.

담당자
문화예술과 문화예술팀 (☎ 055-650-4514)
만족도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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