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거리 한복판, 시와 사랑이 머무는 자리
통영시 중앙로와 청마거리가 만나는 삼각형 자투리 공간. 4차선 도로 확장에 따라 조성된 소공원 한켠에는 청마 유치환의 대표작 「향수」 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관상용 조경 정도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자투리 공간을 시비로 채운 것은 통영이 예향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이곳에는 나무 그늘과 의자가 설치되어 시민과 관광객 누구나 시를 읽으며 쉴 수 있는 작은 문학 정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바로 옆에는 또 다른 시 「행복」 시비도 나란히 서 있어 두 편의 시가 서로 다른 감성으로 조화를 이룹니다.
1934년 『동아일보』에 처음 발표된 후, 청마시초에 실린 「향수」는 고향과 단절된 시인의 고독과 내면의 갈등을 절절하게 담은 작품입니다. "나는 영락한 고독의 까마귀…"로 시작하는 이 시는 고향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자의 슬픔을, 이국의 거리에서 되새기는 비애로 그려냅니다. 비록 증오하며 떠났지만 결국 그리움을 지울 수 없다는 시인의 고백은, 인간 본연의 감정이자 문학적 통찰로 자리잡습니다. 정지용의 「향수」가 섬세하고 서정적이라면, 청마의 「향수」는 힘찬 남성적 시어로 표현된 고뇌의 노래입니다.
통영 중앙동우체국 앞에 위치한 또 하나의 시비는 청마 유치환의 사랑을 상징하는 「행복」입니다. 이 시는 시조시인 이영도에게 보낸 수천 통의 편지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고백의 결정체입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이보다 행복하나니라.” 이 한 줄은 주체적 사랑, 내면의 충만함, 그리고 영혼의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시비는 우체국 창가에서 바로 볼 수 있도록 설치되어 있으며, 청마의 체취가 깃든 공간으로 많은 이들이 찾는 문학 성지가 되었습니다. 편지를 부치던 장소에서 직접 시를 만나는 이 경험은, 단순한 독서를 넘어선 깊은 감동을 전합니다.
「행복」 시에는 단지 한 편의 시 이상의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청마는 1946년 통영여중 교사로 부임한 이영도를 만나 평생에 걸쳐 편지를 주고받으며 플라톤적인 사랑을 이어갔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쓰여진 편지는 단순한 연정이 아닌, 시인의 존재 이유이자 삶의 구원과도 같은 행위였습니다. 청마는 “사랑을 받는 것은 내가 소유됨이요, 사랑하는 것은 내가 소유하는 것”이라며 사랑의 주체로서 존재하기 위한 시인의 열망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시 「행복」에 그대로 녹아 있으며, 시비 앞에서 그 문장을 따라 읽는 순간 우리는 시인이 남긴 진정한 ‘행복’을 마주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