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고향을 그린 윤이상의 공간
윤이상공원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기 위해 2010년 통영시 도천동에 조성된 공간입니다. 윤이상의 생가터를 중심으로 조성된 이곳에는 기념관과 전시관, 전신상이 마련되어 있어 고인의 삶과 예술세계를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부지면적 6,437㎡에 이르는 공원 내 기념관은 지상 2층 규모로, 유품 170여 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한예종 민현식 교수가 건축 설계를 맡았습니다. 공원 한편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던 윤이상의 모습을 형상화한 전신상이 세워져 있어 관람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윤이상은 1917년 통영에서 태어나 바이올린과 기타를 통해 음악과 인연을 맺은 후, 서른여덟에 유럽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작곡가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오페라, 교향곡, 실내악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며, ‘중심음’이라는 독창적인 작곡 기법으로 서양 음악계에 새로운 흐름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1959년 ‘7개의 악기를 위한 음악’은 그를 국제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정적인 분위기 속의 긴장감을 표현한 그의 음악은 서양에서 동양의 정중동(靜中動)을 느끼게 한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는 뉴욕 브루클린 음악원에서 선정한 20세기 최고 작곡가 중 한 명으로, 유럽 음악계에서도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윤이상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며 조국에서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사건 이후 그는 고향 땅을 다시 밟지 못한 채 독일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민족관은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예술가로서 남북을 아우르려는 소망을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공원 2층 전시실에는 북한에서 제작한 윤이상의 흉상이 전시되어 있어, 그가 예술로 추구했던 화해와 평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윤이상은 자신의 음악이 통영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릴 적 우물가에서 들은 민요, 사찰의 종소리, 어부들의 남도창 등은 그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이는 그의 작품 곳곳에 녹아 있습니다. 전통 악기의 기법을 서양 관현악에 접목시킨 그의 음악은 한국적인 정서를 세계 무대에 전달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특히 그는 “통영의 바람 소리조차 음악처럼 들렸다”고 고백할 만큼, 고향에 대한 애정을 음악으로 승화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