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소개
통영 시내 중심부를 따라 걷는 이 코스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문화예술과 역사의 결이 어우러진 도보기행입니다. 오래된 거리 곳곳에 스며든 문학적 흔적과 예술인의 삶은 마치 한 권의 책을 읽는 듯한 감동을 줍니다. 조선 수군의 위엄을 간직한 세병관부터 시작하여, 시대를 대표한 시인들의 생가와 기념공간, 시민과 함께하는 예술마을 동피랑까지, 통영의 속살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통영 중심부에는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생가와 그들의 문학세계가 담긴 전시관이 밀집해 있습니다. 초정 김상옥의 생가터와 시비가 위치한 남망산조각공원, 청마 유치환의 문학관과 청마거리, 김춘수의 유년 시절을 기억하는 여황산 일대는 작가의 삶과 작품의 배경을 함께 조명합니다. 이들의 시는 단순히 텍스트를 넘어, 고향과 가족, 자연에 대한 깊은 감정을 반영하며 방문객에게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세병관은 조선 수군의 중심이었던 통제영의 객사로, 그 건축적 규모와 위용은 당시의 역사적 의미를 고스란히 전합니다. 이곳은 단지 군사시설을 넘어 통영이 군사·행정의 중심지였음을 증명하는 공간입니다. 주변에는 복원된 통제영 건물들이 자리하며, 방문객은 조선시대 군영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세병(洗兵)'이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처럼, 역사의 무게를 씻고 새로움을 담는 상징적 장소입니다.
동피랑 벽화마을은 골목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꾸며진 곳으로, 주민과 예술가, 관광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공간입니다. 또한, 시장과 일상의 풍경이 어우러진 중앙전통시장과 통새미 우물길은 통영 사람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여정을 제공합니다. 예술과 일상이 맞닿아 있는 이 거리에서는 누군가의 시선이 머물렀던 풍경을 그대로 따라가며,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이 코스는 정해진 순서보다 개인의 관심과 속도에 맞춰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입니다. 누구는 청마문학관에서 시작해 중앙시장으로 마무리할 수도 있고, 또 누구는 동피랑의 해질 무렵 풍경을 마지막으로 남길 수도 있습니다. 각 공간마다 이야기와 상징이 깃들어 있어 걷는 이에게 저마다의 해석과 감동을 제공합니다. 통영은 보는 만큼, 걷는 만큼 더 깊이 있는 도시입니다.
통영에서 태어난 시인 초정 초정 김상옥은 1920년 음력 5월 3일, 경남 통영시 항남동 64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여섯 누이와 외아들로 자란 그는, 가족 모두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태어난 환경은 그를 ‘왕’처럼 만들었고, 그의 외고집적이고 거침없는 성격은 이러한 조건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난이 그를 단련시켰으며, 초정은 이를 두고 “가난이 곧 학교”였다고 표현했습니다. 시 「봉선화」의 배경 초정은 통영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출감한 뒤, 면회를 왔던 누님의 부름을 받아 함경북도 청진 인근으로 가게 됩니다. 처음 접한 추위와 낯선 말씨, 음식 속에서 그는 고향의 따뜻한 날씨와 사람들, 바닷가 음식을 그리워했고, 향수병에라도 걸렸을 것이라 말합니다. 시 「봉선화」는 그러한 감정과 기억 속에서 쓰이게 되었고, 『문장』 제3호(1939년 10월)에 실리며 초정의 등단작이 되었습니다. 남망산에 세워진 「봉선화」 시비 초정의 시 「봉선화」는 현재 남망산조각공원 상층부에 시비로 세워져 있습니다. 장독간, 봉선화, 꽃물 들인 손톱 등 소박한 시어들 속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시비 앞을 지나는 이들이 쉽게 지나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인상을 줍니다. 누님의 기억과 「누님의 죽음」 초정을 돌봐주던 누님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초정은 그 임종을 지켜보며 「누님의 죽음」이라는 시를 남겼습니다. ‘새도록 눈을 쓸어도 감지 않고 가드이다’라는 구절에는 누님에 대한 슬픔과 상실감이 절절히 담겨 있습니다. 문학계의 평가 초정의 시는 단 한 편으로도 주목받았습니다. 국문학자 가람 이병기는 「봉선화」를 두고 ‘타고난 시인이 아니고는 표현할 수 없다’고 했고, 미당 서정주는 ‘귀신도 곡할 만큼’ 슬픔이 담긴 시라며 초정의 감수성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여행 TIP 초정 김상옥의 생가는 통영시 항남동 64번지에 있으며, 「봉선화」 시비는 남망산조각공원 상층부에 위치합니다. 시 속 배경인 장독간과 꽃물, 누님과의 기억 등을 떠올리며 시비 앞에서 시를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봉선화」는 초정이 함경북도 청진 근처에서 머무르며 쓴 시로,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고 있습니다.
청마 유치환 선생을 기리는 문학의 거리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자 문학가인 청마 유치환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의 작품 세계와 삶의 배경이 되었던 통영의 일정 구간을 2001년 2월 ‘청마거리’로 지정하였습니다. 이 거리는 청마의 문학 세계를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된 문학적 테마공간입니다. 문학적 감성이 살아 있는 탐방 코스 청마거리는 유치환 선생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그의 생애와 작품 활동이 펼쳐졌던 공간들을 연결하며, 문학 애호가들에게는 의미 있는 탐방 코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작품 속 구절과 삶의 흔적이 깃든 이 거리는, 산책하듯 걷는 동안 자연스레 문학과 감성에 젖게 만드는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문화자원으로 가꾸어진 지역 공간 청마거리는 단순한 기념 거리를 넘어, 통영 고유의 문화자산으로서 정비되고 있으며, 조형물과 안내 표지판 등이 설치되어 문학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통영 시민은 물론, 외지인들에게도 지역의 품격을 알리는 문화 기반 시설로 가꾸어지고 있습니다. 여행 TIP 청마거리는 중앙동 우체국 인근에서 시작되며, 주요 시구절이 담긴 조형물과 안내판을 따라 걸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거리 곳곳에 청마의 생애와 시가 설명되어 있어, 문학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뜻깊은 시간이 됩니다. 인근에는 충무교회, 문화유치원 터 등 유치환 선생과 관련된 유적지도 함께 위치해 있어 코스로 연계해보세요.
조선 수군의 위용을 보여주는 객사 세병관은 조선시대 통제영의 객사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통제영을 현재 위치로 옮긴 이듬해인 1605년에 처음 세워졌습니다. 이후 제35대 통제사 김응해가 1646년에 규모를 크게 확장해 다시 지었고, 제194대 통제사 채동건이 1872년에 개수하였습니다. 정면 9칸, 측면 5칸의 9량구조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장대석 기단과 50개의 민흘림 기둥을 갖추고 있으며, 벽체와 창호 없이 통칸으로 시원하게 트여 있는 구조가 특징입니다. 세병관의 구조와 건축적 특징 세병관은 조선시대에 건립된 건축물 중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로, 경복궁의 경회루, 여수의 진남관과 함께 손꼽히는 대형 건물입니다. 우물마루와 연등천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내부 중앙 3칸은 한 단을 올려 전패단을 구성하고, 상부는 소란반자로 마감하였습니다. 이 공간은 3면에 분합문을 두어 위계를 강조하였습니다. 전체적으로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건물의 위용은 통제영의 기상을 잘 보여줍니다. 세병관이라는 이름의 의미 ‘세병’이란 이름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유래된 것으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세병관의 상징성과도 맞닿아 있으며, 정면에 걸린 ‘세병관(洗兵館)’이라는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 서유대가 쓴 글씨입니다. 군사 시설이자 상징적인 공간으로서의 세병관은 그 이름과 구조 모두에서 조선 수군의 정신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여행 Tip 세병관은 정면 9칸, 측면 5칸 규모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조선시대 객사의 건축 양식을 관찰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현판 ‘세병관(洗兵館)’은 제137대 통제사 서유대가 직접 쓴 글씨입니다.
청마 유치환이 태어난 곳 시인 청마 유치환은 1908년 7월 14일, 통영시 태평동 552번지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유준수는 한의사였고, 어머니 박우수는 예술적인 기질을 지닌 분으로 5남 3녀 중 차남으로 유치환을 낳았습니다. 생가는 도로 확장으로 철거되어 현재는 ‘통영누비’라는 상점이 있고, 맞은편에는 ‘영수당한의원’이 있습니다. 생가의 원형은 청마문학관에서 복원되어 전시 중입니다. 출생지를 둘러싼 논란과 판결 청마의 고향을 두고 통영과 거제 간에 논란이 있었으며, 유족 측은 청마의 출생지가 거제라고 주장하며 관련 표기 삭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청마 스스로 시 해설집 『구름에 그린다』와 수필집 『나는 고독하지 않다』 등을 통해 자신의 출생지를 통영으로 명확히 밝혔고, 대법원은 유족의 주장을 기각하며 법적으로도 통영이 출생지임을 인정하였습니다. 청마가 남긴 고향에 대한 증언 청마는 자신의 글에서 ‘통영(지금의 충무시)’을 출생지로 표현하고 있으며, 어머니의 산소가 있는 거제 둔덕을 ‘고향서도 바다 건너 있는 곳’이라 말합니다. 이는 생활의 중심이 통영이었음을 나타내는 기록으로 평가됩니다. 형 유치진 또한 수필과 방송에서 자신이 통영에서 태어났다고 밝혔습니다. 거제와 통영, 그리고 유족의 선택 청마의 아버지 유준수는 거제 둔덕 출신이었고, 결혼 후 처가인 통영에서 한의업을 이어갔습니다. 유족이 거제에 유품을 많이 기증한 배경에는, 거제시의 적극적인 기념사업 추진에 대한 감사의 뜻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통영에서는 문화적 논란으로 유족의 감정이 상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여행 TIP 청마의 생가터는 통영시 태평동 552번지 일대이며, 현재는 상점과 도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청마문학관에서는 생가의 원형이 복원되어 있으며, 그의 작품 세계와 생애를 소개하는 다양한 전시물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통영이 낳은 최초의 서양화가 김용주는 1910년 10월 14일 통영시 태평동 617번지에서 태어났으며, 한말 인동도호부사를 지낸 김진현의 증손입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1926년 통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경 메이지학원 중학부를 수료하고 카와바타 미술학교 양화부에 입학, 1934년 졸업했습니다. 이후 인체 연구를 중심으로 6년간 표현 기법을 탐구하며 서양화에 대한 이해를 넓혔습니다. 예술과 사람, 두 세계를 잇다 귀향 후 그는 항남동에 화실을 열고 창작 활동을 이어갔으며, 통영 지역 예술인들과 교류하며 문화 중심 인물로 자리잡았습니다. 유치환, 장응두, 정찬진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그의 화실을 드나들었고, 사람 좋은 성품과 유머 감각으로 널리 사랑받았습니다.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에 , 이 입선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후진 양성에 힘쓰며 통영 미술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이중섭과의 인연, 그리고 마지막까지의 작품 활동 1953년, 피난 온 이중섭이 산양면 김용주의 집에서 머물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고, 이후 성림다방 개인전을 함께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김용주는 데생을 중시하며 예술의 진실성을 강조한 화가였고, 누드와 인물화를 즐겨 그렸습니다. 병을 얻은 이후에도 꾸준히 창작을 이어가던 그는 1959년 1월 15일 부산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유산 김용주는 생전 약 3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으며, 일부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고향인 통영에는 남아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아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의 생가 인근에는 현재 '모아넷'이라는 상호가 있는 건물이 있으며, 건물 앞에는 김용주가 살았던 곳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여행 TIP 김용주가 살았던 곳은 중앙동사무소 맞은편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위치해 있으며, 현장에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김용주가 활동했던 항남동 일대는 이중섭, 유치환 등 다양한 예술인들의 흔적이 남아 있어 통영 예술 산책 코스로도 적합합니다.
형제의 삶이 깃든 기념공간 통영시 태평동 주전3길 18에 위치한 김용식·김용익 생가는 형제가 태어나고 자란 가옥을 개보수하여 기념관으로 조성한 공간입니다. 2013년 4월 17일 개관하였으며, 김용식 전 외무부장관의 장남 김수환 목사 부부가 통영시에 기부채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지면적 356㎡의 이 기념관은 한 집안에서 태어난 외교관과 작가를 함께 기리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사례로, 통영의 문화예술사적 의미를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대한민국 외교의 길을 연 김용식 1913년생인 김용식은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단정한 태도로 외교 무대에서 ‘신사 외교관’으로 불렸습니다. 신생 대한민국의 외교적 대변자 역할을 자처했으며, 외교관으로서의 삶 외에도 동생 김용익의 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보였습니다. 그는 동생이 문학으로 더 오래 기억될 것이라 예견할 정도로 그 업적을 존중했습니다. 영문학으로 세계를 울린 김용익 1920년생 김용익은 통영초등학교와 중앙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동경 아오야마학원 영문과를 나왔으며, 1948년 미국 유학 후 소설창작을 전공하였습니다. ‘꽃신’, ‘겨울의 사랑’, ‘푸른 씨앗’ 등은 미국과 유럽에서 출판되며 인정받았고, ‘꽃신’은 세계 19개국에서 소개되며 노벨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된 바 있습니다. 그는 작가로서 문학성과 언어적 감수성 모두를 인정받은 인물입니다. 곧은 성품과 검소한 삶 김용익은 삶의 모든 면에서 원칙을 고수한 인물로, 교수로 재직 중에도 학문적 공정성을 철저히 지켰던 일화들이 전해집니다. 자동차나 시계 없이 살았고, 신문이나 TV를 보지 않으며 글쓰기에 전념했습니다. 그의 글은 문체의 예술성과 함께 인간에 대한 신뢰를 담고 있어 해외 평론가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문학과 외교를 기리는 공간 기념관에는 김용식의 외교 활동을 기리는 자료와 김용익의 주요 작품 관련 전시가 마련되어 있으며, 형제가 걸어온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을 한 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생가 공간은 통영 예술정신의 깊이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로서 의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여행 TIP 김용식·김용익 기념관은 형제가 태어나고 자란 통영시 태평동 주전3길 18, 옛 생가를 리모델링하여 조성되었습니다. 기념관은 2013년 4월 17일 개관되었으며, 김용식 전 외무부장관의 장남 김수환 목사 부부가 생가를 통영시에 기부채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담벼락에 펼쳐진 예술 골목 동피랑벽화골목은 통영시 중앙동 언덕 위에 위치한 마을로, 구불구불한 오르막 골목길을 따라 담벼락마다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주민들의 마을이자 예술 공간인 이곳은 벽화 공모를 통해 지속적으로 갱신되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습니다. 골목 사이사이마다 특색 있는 벽화와 아기자기한 소품이 조화를 이루며, 사진 촬영지로도 인기가 많습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통영의 야경 동피랑 마을의 정상에는 ‘동포루’가 위치해 있으며, 이곳에서는 강구안을 비롯한 통영항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낮에는 활기찬 관광객들로 붐비는 이곳이지만, 해가 지고 난 후에는 한적한 야경 명소로 탈바꿈하여 통영의 고즈넉한 밤바다와 불빛을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입니다. 저녁이후로 상점과 카페는 운영을 마치지만, 조용한 마을 산책과 함께 야경을 즐기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주민과 함께하는 조용한 여행지 동피랑은 관광지이자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생활 공간입니다. 특히 야간에는 정숙이 요구되므로 큰 소리나 소란스러운 행동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벽화를 감상하며 걷는 동안 마을의 고요함과 예술이 함께 어우러지는 특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방문객 여러분의 배려가 동피랑의 아름다움을 지켜주는 소중한 힘이 됩니다. 여행 TIP 동포루 전망대는 일몰 직후 방문하시면 아름다운 강구안의 야경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야간에는 주민 생활을 배려해 조용히 이동해 주세요. 야간 관광 및 문화행사 정보는 통영 야간관광 인스타그램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김춘수의 유년과 여황산의 기억 김춘수 시인은 통영의 여황산 자락에 위치한 초등학교에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여황산은 그가 자주 오르내리던 공간으로, 붉은 벽돌집과 샛노란 죽도화가 피던 풍경은 이후 그의 시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우지에 실린 글로 문재를 인정받았고, 시를 쓰기 전부터 자연과 고향에 대한 관찰과 애정이 문학적 토양으로 자리 잡았음을 그는 직접 밝히고 있습니다. 일본 유학 중 겪은 감옥생활 김춘수는 일본 유학 시절 노동 현장에서 한국인 고학생들과 어울리며 시국 이야기를 나눈 것이 빌미가 되어 요코하마 헌병대에 연행되어 보름간 수감 생활을 겪습니다. 그는 고문과 추위 속에서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시인하게 된 경험을 수치로 여기며, 이 시기를 ‘씻기 어려운 모욕’으로 회고했습니다. 이를 통해 시인은 현실의 억압과 내면의 고통을 날 것 그대로 마주했던 젊은 시절을 직접 증언하고 있습니다. 시인의 회고 속에 살아 있는 고향 김춘수는 고향 통영과 여황산을 단순한 배경이 아닌 문학적 자양분으로 회상합니다. 자연스럽게 고향과 가족을 사랑하라는 스승의 말, 어린 시절 보았던 풍경은 『왜 나는 시인인가』라는 에세이 속에 구체적인 기억으로 되살아납니다. 고향은 그에게 단순한 출생지가 아니라 문학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여행 TIP 김춘수 시인의 유년 시절 기억이 서린 여황산은 통영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그 자락에는 현재도 학교와 주택가가 있어 에세이에 언급된 풍경 일부를 떠올려볼 수 있습니다. 『왜 나는 시인인가』에 등장하는 여황산, 탱자나무 울타리, 선교사 붉은 벽돌집 등은 실제 지형이나 주변 장소와 비교하며 문학기행의 감상 포인트로 삼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