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소개
통영에는 조상들의 생활과 신앙이 스며든 민속문화유산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특히 산양읍 삼덕리에 위치한 삼덕리마을제당은 장군당과 천제당으로 구성된 전통 제당으로, 제례문화를 간직한 중요한 민속 공간입니다. 돌벅수와 함께 전해 내려오는 신화는 지역의 신앙과 공동체 의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백운서재는 가난한 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던 고시완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서재로, 조용하고 단정한 분위기 속에서 전통 학문과 유림 정신을 되새기게 합니다. 광도면 죽림리에 위치한 통영향교 역시 지방 유림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창건된 교육기관으로, 대성전과 명륜당 등 전통 건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전통 교육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고찰 안정사는 벽방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쾌불, 만세루, 범종 등 다양한 유형문화재가 밀집해 있는 유서 깊은 불교문화의 중심지입니다. 미륵산 자락의 용화사는 미륵좌상을 비롯한 다채로운 전각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인근 해평마을에 전해지는 해평열녀의 전설과 사당, 청동기시대 고인돌은 삶과 죽음, 효와 충절을 잇는 정신적 유산입니다.
통영은 오랜 세월 동안 수산업이 번창해온 고장으로, 수산과학관에서는 과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통영 수산업의 발달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단순한 전시공간을 넘어 아이들과 가족 단위 관람객이 바다와 어업의 소중함을 배우기에 적합한 장소로, 과학관 앞에서 바라보는 한려수도의 풍경도 놓칠 수 없는 장면입니다.
도심에서 가볍게 민속문화재를 만날 수 있는 장소로는 향토역사관과 돌장승이 있습니다. 세병관 맞은편에 위치한 향토역사관은 통영의 역사와 문화를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여주는 공간이며, 길가에 세워진 비보장승은 동락동의 풍수적 허점을 보완하고자 세워진 것으로 통영 시민들에게는 ‘벅수’라는 이름으로도 친숙합니다. 일상과 역사가 공존하는 공간입니다.
신라시대 창건된 안정사 안정사는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안정리 벽방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 무열왕 1년(654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14방(坊)의 당우에 1,000여 명의 승려가 수도했던 대찰이었으며, 사세가 매우 컸던 사찰입니다. 중건과 현존 건물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되었으나, 이후 인조 4년(1626년), 영조 9년(1733년), 현종 7년(1841년), 고종 17년(1880년)에 걸쳐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대웅전에는 고려 공민왕 7년(1358년)에 조성된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나한전은 1626년에 중건된 건물로 석가모니불과 16나한상 등 총 23위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문화재와 주요 전각 경내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나한전, 칠성각, 응향각, 탐진당 등 15동의 전각이 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가섭암, 은봉암, 의상암, 천개암 등의 산내 암자가 있으며, 이 중 은봉암은 징파화상이 창건한 암자로, 세 개의 자연석과 관련된 도인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그중 하나의 돌만 남아 있으며, 새로운 도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습니다. 범종과 유물 현황 사찰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3호인 범종이 보관되어 있으며, 범종에는 ‘만력 8년’(1580)이라는 명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외에도 1650년(효종 1년)에 제작된 원경, 약 10m 높이의 괘불(경남유형문화재 제282호), 금강경, 삼돌경 등의 불경 목판 31매, 대궐에서 하사받은 가마와 인수, 궤 등 다양한 유물도 함께 보존되어 있습니다. 여행 TIP 안정사는 벽방산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어 조용한 산사 분위기 속에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대웅전과 범종, 괘불 등은 문화재 지정 대상이므로 관람 시 안내문을 참고해 주세요. 사찰 방문 시에는 예의를 갖추고 조용한 태도로 관람해 주시기 바랍니다.
통영 유림의 뜻으로 창건된 향교 통영향교는 광무 4년(1900), 통영 지역이 고성현에서 분리되어 진남군으로 독립하면서 유림들이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1901년 고성향교에서 분리하여 창건한 교육기관입니다. 통영시 죽림마을의 평지에 자리한 이 향교는 198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전통 건축으로 구성된 향교 공간 통영향교는 대성전, 동무, 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제기고, 내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평지형 직렬 배치로 앞에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을, 뒤에는 문묘 공간인 대성전을 두는 형식입니다. 풍화루는 중심축에서 약간 비틀어 배치되어 공간에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각 건물은 조선 후기 유학 공간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일부 독특한 구성방식을 보여줍니다. 제례와 교육이 함께 이루어진 장소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오성의 위패가, 동무와 서무에는 우리나라의 18현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는 석전제를 봉행하고 있습니다. 명륜당은 유학의 핵심 덕목인 삼강오륜과 윤리 규범을 가르치던 강당으로, 동재와 서재는 학생들을 교육하던 교실로 사용되었습니다. 향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유교 윤리를 생활 속에 실천하는 정신적 중심지였습니다. 향교 건축의 구조적 특징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반의 맞배지붕 건물로 팔작지붕 형식을 도입한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동무와 서무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삼량 민도리집이며, 전퇴를 개방하였습니다. 내삼문은 일각문 형태의 솟을 삼문이고, 대성전 옆에는 제기고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3칸은 대청으로 개방되고, 양쪽 협칸은 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면에 툇마루와 평난간을 두었습니다. 동재와 서재 또한 팔작지붕 구조이며, 서재는 전면 마루와 측면 대청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유학 학습 공간입니다. 여행 TIP 통영향교는 평지에 위치해 있어 접근이 편리하며, 전통 건축양식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석전제는 일반인도 참관할 수 있는 공개 행사로, 유교 제례문화를 체험하기 좋은 기회입니다. 향교 방문 시에는 조용히 관람하며 내부 공간의 출입 제한 구역을 준수해 주세요.
세병관 길목에서 만나는 벅수 통영시 문화동, 세병관으로 오르는 도로 오른쪽에 위치한 이 벅수는 돌로 만든 장승(石長丞)으로, 통영 방언으로 장승을 ‘벅수’라고 부릅니다. 벅수는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워 수호신, 경계표지, 이정표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유일한 남성 벅수, 토지대장군 문화동 벅수는 일반적인 남녀 한 쌍의 장승과 달리, 남성 하나만 세워진 독벅수 형태입니다. 몸 앞에는 ‘土地大將軍(토지대장군)’이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으며, 등 뒤에는 ‘光武十年八月 同樂洞 立’, 즉 1906년 8월 동락동에서 세웠다는 기록이 새겨져 있습니다. 풍수와 신앙이 만난 비보장승 이 벅수는 당시 동락동 주민들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동남쪽 방향이 허하다는 판단 아래, 허함을 보완하고 진압하기 위해 세운 비보장승입니다. 단순한 상징물을 넘어 마을의 수호와 벽사(辟邪), 축귀(逐鬼), 방재(防災), 진경(進慶)의 기원이 담긴 신앙적 조형물입니다. 험상궂지만 따뜻한 미소 벅수의 얼굴은 험상궂으면서도 미소를 머금은 독특한 표정을 하고 있어 민간 조형물로서의 미적 가치도 높습니다. 보기 드문 독벅수로서 통영 지역의 민속자료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행 TIP 문화동 벅수는 세병관 진입로 오른편에 위치해 있어 세병관 방문 시 함께 둘러보시기 좋습니다. 벅수에 새겨진 음각 문자와 조형미는 가까이에서 직접 관찰하시면 더욱 생생하게 느끼실 수 있습니다. 풍수지리와 민간신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 흥미로운 문화유산 체험이 될 것입니다.
백운 선생의 생애와 학문 백운서재는 조선 후기 실학자 백운암 선생의 학문과 인격을 기리기 위해 남겨진 유적지입니다. 선생의 자는 문언이며 본관은 제주, 정조 7년(1783)에 출생하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형 시양과 함께 학문에 정진하였고, 출세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학문에 몰두하여 성리학과 실학의 탐구에 전념하였습니다. 특히 천인 관계와 이기론에 대한 깊은 연구로 후학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천암산 기슭의 교육 공간 선생은 천암산 기슭에 조촐한 서재를 짓고 강당을 열어 많은 제자들에게 학문을 전수하였습니다. 그는 재물이나 세속을 탐하지 않고 성실한 자세로 후학을 지도하였으며, 단정한 몸가짐과 정성어린 가르침으로 교육자적 모범이 되었습니다. 주변에 샘물을 끌어와 조그만 연못을 만들고 정원을 가꾸는 등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학문과 예술을 함께 즐겼습니다. 학문적 업적과 정신적 유산 선생은 『역대상도해』, 『중용성명도』, 『몽대인기』, 『혹인문답』 등 여러 저서를 남겼고,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우주론과 인성론에 대한 깊은 사유를 펼쳤습니다. 헌종 7년(1841) 타계 후 제자들이 인평동 국재 언덕에 유택을 조성하고 장례를 치렀으며, 강당 뒤에는 사우를 세워 제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도 해마다 음력 8월 하정일에 유림에서 채례를 모시고 있으며, 서재 일부와 정원, 연못, 대나무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전설로 전해지는 일화 백운 선생과 관련한 일화 중에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통제영에서 군점행사를 진행하던 날 학동들이 수조 장면을 보고 싶어하자, 선생은 연못가에 앉힌 학동들 앞에서 계수나무 잎을 훑어 물 위에 뿌리자 잎사귀들이 전선으로 변해 정연한 대오를 이루며 수조를 펼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는 선생의 학문적 통달과 정신적 깊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행 TIP 백운서재는 한적한 자연 속에 있어 조용한 사색과 산책에 좋습니다. 서재 주변에 남아 있는 연못과 정원을 통해 선생의 삶의 철학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용화사는 경상남도 통영시 봉평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이다. 1983년 7월20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0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신라 27대 선덕여왕(632∼646)에 은점화상이 초대하여 미륵산 중턱에 절을 짓고 정수사라 하였으며 고려시대인 1260년(원종1)에 산사태로 허물어진 것을 3년뒤 자윤, 성화, 두 화상이 미륵산 제3봉 아래로 자리를 옮겨 짓고 천택사라 하였다. 1629년 (조선 인조6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52년(영조28년)에 벽담선사가 현대의 용화사 자리에 새로 중창하고 다시 용화사로 개칭하였다. 용화사 경내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집인 경북유형문화재 249호인 보광전을 비롯하여 좌측 1칸에 효봉영각을 차려놓은 명부전, 미륵불좌상을 봉안한 용화전, 강단인 탐진당, 선실인 적묵당, 문루인 해월루 등 목조건물과 육모정 형태의 종루가 있다. 그 위쪽에 진신사리 7과를 봉안하고 있는 불사리 4사자법륜탑과 효봉대종사 5층사리탑이 있다. 또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63호로 지정된 금고가 보관되어 있다. 금고란 절에서 사용하는 불구인데, 대중을 불러 모으거나 급한 일을 알릴 때 사용하는 금속으로 만든 타악기이다. 별다른 문양이 없는 소박한 형태로 옆면에는 시주자명과 건륭 49년에 제작되었다는 내용의 글이 새겨져 있는 소박한 형태이다. 청동합금으로 주조된 이 금고의 이 글을 통해 시주자명과 제작연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 금고는 바깥지름 67.7㎝, 안지름 54.8㎝, 너비 12.6㎝이다. 경남유형문화재 249호인 용화사 보광전 법당에 걸려 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이름 없이 전해지는 해평열녀 해평열녀는 성명이나 생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살던 마을 이름을 따라 ‘해평열녀’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전해지며,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용화산 아래, 한 젊은 부부의 비극 해평 마을에는 한 열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시집온 지 몇 달 되지 않아 남편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풍랑에 휩쓸려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배에 탔던 사람에게 표류한 위치를 물은 그녀는 남편을 찾기 위해 바다로 향했지만,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아무런 실마리도 주지 않았습니다. 남편을 찾지 못한 열녀는 결국 바다에 몸을 던졌고, 3일 뒤 부인의 시신이 남편의 시신을 꼭 껴안은 채로 바다에 떠올랐습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부부의 시신은 함께 수습되어 같은 곳에 묻혔습니다. 산과 들에 새겨진 열녀의 이름 이후 마을에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벌레들이 나뭇잎을 갉아 만든 무늬가 ‘열녀’라는 글자로 나타났고, 이 현상은 마을 곳곳의 산에서 동일하게 발견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열녀의 넋을 기리는 하늘의 뜻이라고 여겼습니다. 기억을 새긴 비석, 해평열녀기실비 이 감동적인 이야기는 마침내 1932년, 『해평열녀기실비』에 새겨져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비석은 이름도 연대도 알 수 없는 한 여인의 깊은 정성과 절개를 기리며, 지역의 역사와 정신을 대변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여행 TIP 해평열녀기실비는 봉평동에 위치해 있으며, 조용히 산책하며 이야기를 되새기기 좋은 장소입니다. 방문 전, 간단한 마을 유래나 전설을 알고 가신다면 현장에서의 감동이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통영 해안에 남은 청동기시대 고인돌 통영시 봉평동 67번지 해안가에는 청동기시대의 무덤 양식인 지석묘 두 기가 남아 있습니다. 이 지석묘는 당시 사람들의 장례 풍습과 사회 구조를 짐작하게 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유산으로, 해안가의 평지에 위치해 있으며 지금도 그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반식 고인돌의 형태 우리나라 고인돌은 형태에 따라 탁자식, 기반식, 개석식으로 구분되며, 봉평동 지석묘는 넓은 덮개돌이 받침돌 위에 얹혀 있는 전형적인 기반식입니다. 이는 전라남도와 경상도 해안 지역에서 흔히 발견되는 양식으로, 당시 해안지방의 고인돌 문화와 연결되는 양상을 보여줍니다. 내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구조나 부장품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외형상 특징이 뚜렷합니다. 덮개돌의 크기와 특징 두 기의 지석묘 모두 덮개돌이 타원형에 가깝고, 큰 덮개돌은 길이 약 270cm, 너비 230cm, 두께 70cm이며, 작은 덮개돌은 길이 265cm, 너비 215cm, 두께 60cm에 이릅니다. 해안가에 위치해 있음에도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지역 내 청동기시대 묘제 문화를 이해하는 데 기초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여행 TIP 봉평동 지석묘는 바닷가 산책로와 가까워 가볍게 둘러보기 좋습니다. 현장에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지 않을 수 있으므로 방문 전 위치를 미리 확인해 주세요. 문화재 보호를 위해 지석묘 위에 올라가거나 손으로 만지는 행위는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해양문화와 수산업의 이해를 돕는 과학관 통영수산과학관은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미남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해양문화유산의 발굴·보전·계승을 목표로 설립된 기관입니다. 통영의 해양관광 체제와 연계하여, 수산업과 해양 생태에 대한 교육 및 전시 기능을 함께 수행하고 있습니다. 전시실 구성과 주요 내용 과학관은 총 5개의 전시실과 영상실, 체험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통영 연근해에서 생산되는 굴, 멍게, 진주 등 다양한 수산물과 어업 활동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수산업의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발전 과정을 비롯해 어부의 생활, 전통 어선과 어구 모형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관람객에게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별도로 마련된 화석·어패류 전시실에서는 신생대 및 중생대의 해양 생물 화석, 산호, 극피동물, 다양한 패류 등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체험 공간과 교육 기능 과학관 내부에는 수산업과 관련한 실물 전시 외에도, 통영의 전통 어선인 통구밍이 모형, 고대 어로 생활 도구 전시, 어구 실물 전시가 함께 마련되어 있습니다. 야외 공간에는 멸치잡이 정치망 통과 체험장과 노 젓기 체험장도 운영되고 있어 어린이와 청소년의 교육 체험 장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시설 구조와 관람 환경 과학관은 배의 형상을 모티브로 한 건축물로, 바다 쪽으로 열린 구조를 통해 통영 앞바다를 조망할 수 있습니다. 주변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위치 덕분에 한려해상국립공원 인근 관광지로도 인식되고 있으며, 관람과 관광을 함께 즐기실 수 있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여행 TIP 관람 시에는 각 전시실 외에도 체험장과 영상실을 함께 이용하시면 학습 효과가 높습니다. 어린이·청소년을 동반한 가족 단위 관람객에게 적합한 교육형 관광지입니다.
장군당과 천제당이 있는 마을 제당 통영시 삼덕리 마을에는 전통적인 제의 공간인 장군당과 천제당 두 동의 건물이 있습니다. 현재의 건물은 근래에 새로 건축된 단칸짜리 목조 맞배기와집 형태로, 4면은 판재로 마감되었고, 바닥은 전통 방식의 우물마루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장군당 전면에는 반칸짜리 전퇴가 마련되어 있으며, 두 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어 제의 공간의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중요 민속자료와 전통 신앙 장군당 내부에는 장군신화가 그려진 1폭의 그림과 함께 큰 목마(木馬) 1점이 보관되어 있으며, 원항마을 입구에 위치한 돌벅수 2기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들 유물은 지역의 신앙과 민속문화를 전해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서, 마을 주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습니다. 다신적 신앙의 예배 공간 삼덕리 마을제당은 한국 전통 농어촌 지역에 널리 퍼져 있는 동제신당의 하나로, 다양한 신을 함께 모시는 다신적 신앙의 예배처입니다. 이곳에서는 천신제, 산신제, 용마제, 잡신제, 조상제, 벅수제, 별신제 등이 함께 지내지며, 민간신앙과 공동체 의식이 결합된 마을 단위의 종교 전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행 TIP 삼덕리 제당은 평소 출입이 제한될 수 있으므로 방문 전 지역 주민 안내를 받으시는 것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