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의 숨결 따라 걷는 한산도 해양 역사 마을길
대고포마을은 삼도수군통제영 당시, 산 능선 사이로 깊이 들어앉은 포구에 염전이 있어 군수용 소금을 공급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염포(鹽浦) 또는 염개라 불렸습니다. 이후 마을 주민들이 소금(鹽)이 아닌 '어린양'을 뜻하는 ‘고양(羔羊)’에서 착안해 '고포(羔浦)'로 바꾸었으며, 1961년에는 대고포와 소고포로 분동되었습니다.
장곡마을은 장곡 본마을, 독암마을, 벌통골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지역은 ‘용의 지혈’을 타고났다는 명당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당산봉수대가 위치해 있어 임진왜란 당시 망산봉수대의 신호를 제승당으로 전달하였던 곳입니다. ‘장곡’이라는 이름은 마을 뒤 긴 골짜기(長谷, 장골)에서 연료용 숯을 만들어 군영에 공급하던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독암마을은 수군에 필요한 질그릇을 만들던 도간바우로도 불렸으며, 벌통골은 산림이 울창해 벌을 놓고 기르던 장소였습니다. 마을 앞바다에는 유자섬이 있습니다.
창동마을은 삼도수군통제영 당시 약 3,000석의 군량미를 비축하던 군량창이 있었던 곳으로, 이순신 장군이 인근 지역에 둔전을 조성하여 확보한 식량을 저장하던 중요 지점입니다. 입정포마을은 수군 전선이 왜적의 습격에 대비하며 초계 활동 중 정박하던 포구로, ‘입정포(立碇浦)’로 불렸습니다. 이곳의 우물은 정화수로 사용되었고, 가뭄 때는 한산도 전체 마을에 물을 공급하기도 해 ‘입정포(立井浦)’라는 이름도 함께 사용되었습니다.
진두마을은 수군이 진을 설치하고 경비초소를 두어 제승당과 연락을 유지하며 해상 경비를 맡았던 곳으로, 진지(陣頭)와 나루터(津頭)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야소마을은 충무공 이순신이 병장기 제조와 수리를 위해 대장간(풀무간)을 설치했던 곳으로, '풀무 야(冶)' 자를 써서 야소(冶所)라 불렸습니다. 오늘날로 보면 병기창 기능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의암마을은 군복을 제작하고 세탁·건조하던 피복창이 있었던 마을로, 바닷가의 넓은 몽돌밭과 바위 위에서 군복을 널어 말렸기에 ‘옷바위(衣岩)’라는 지명이 유래하였습니다.
하포마을은 군수물자의 조달과 보급을 담당했던 병참기지였습니다. 여러 곳에서 조달한 물자들을 어깨에 메고 옮겨 싣고 풀었다 하여 ‘멜개’, ‘하포(荷浦)’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장작지마을은 통제영 수군들이 학익진 등 각종 진법을 훈련하던 장소로, 원래 ‘진작지(陳作支)’라 불렸으며, 이후 별칭인 ‘장흥(長興)’의 ‘장(長)’자를 따 ‘장작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의항마을은 한산해전에서 패한 왜군의 잔당들이 퇴로를 찾다 산허리를 파고 도망치려 하던 곳으로, 그들이 엉켜 움직인 모습이 개미떼 같았다 하여 ‘개미허리’를 뜻하는 의항(蟻項)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