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과 전선 노의 흔적이 남은 역사 마을 길
대고포는 삼도수군통제영 당시 산 능선 사이로 깊이 들어앉은 포구로, 군수용 소금을 굽기 위해 염전이 조성되었던 곳입니다. 처음에는 ‘염포(鹽浦)’ 혹은 ‘염개(鹽開)’라 불렸으나, 마을 사람들이 ‘염(鹽)’ 대신 ‘고양(羔羊)’의 ‘고(羔)’자를 따와 ‘고포(羔浦)’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1961년에는 대고포와 소고포로 행정구역이 분리되며 현재의 지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여차마을의 옛 지명은 ‘내추리’로, 배를 젓는 도구인 ‘노(櫓)’를 뜻하는 방언 ‘뇌추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산도 삼도수군통제영에서 사용하던 각종 전선에 필요한 노를 제작해 공급하던 마을로 알려져 있으며, 물자 생산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후 이 마을은 제승당 다음으로 명당이라 하여 ‘여차(汝次)’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대고포와 여차마을은 모두 조선 수군과 관련된 실질적 기능을 배경으로 지명이 유래되었습니다. 대고포는 염전을 통한 군수물자 생산지였고, 여차는 전선에 필수적인 노를 제작한 기술 기반의 마을이었습니다. 두 마을의 명칭은 단순한 지명이 아닌 역사적 역할과 공동체의 기억을 반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