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 정벌과 조선 수군의 기억이 남은 예곡마을
예곡(禮谷)마을은 세종 원년인 1419년, 삼군도체찰사 이종무 장군이 삼남의 병선 227척과 17,000여 병력을 이끌고 대마도 정벌에 나설 때 출정지로 활용된 천혜의 요항 주원방포(周元方浦)였습니다. 이곳은 임진왜란 이전에도 인접한 거제 가배에 경상우수영이 주재할 당시 병선 집결지이자 전투 훈련장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예곡에는 망산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봉수군과 군병사들이 주재하였습니다. 봉수대는 왜적의 동태를 살피고 인근 지역에 긴급 상황을 알리는 통신시설로, 이 일대는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과거 이곳은 관기를 주거시켰던 데서 유래해 여기곡(女妓谷) 또는 여골(女谷)이라 불렸으나, 1925년 마을 원로 이강조(李康漕) 씨가 ‘예의(禮儀)를 지키는 마을이 되자’는 뜻으로 ‘예곡(禮谷)’으로 지명을 변경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