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와 기억이 흐르는 언덕, 원문 생활공원
통영 원문공원은 누구나 통영을 오가며 지나치지만, 일부러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좀처럼 찾지 않는 고요한 공간입니다. 그 고요함 속에는 이 땅을 지켜낸 수많은 영혼이 잠든 역사와 희생이 고스란히 스며 있습니다. 학창 시절 존재를 기억하기 어려운 동창처럼 소리 없이 자리한 이 공원은 통영 초입 원문고개에 위치하며, 도시의 소란에서 벗어나 깊은 사유의 시간을 선사합니다. 통영의 대표 공원들이 자연경관과 휴식을 위한 곳이라면, 원문공원은 추모와 반성이 어우러진 도시의 정신적 심장과 같은 곳입니다.
‘원문(轅門)’이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삼도수군 통제영이 있던 시절 진영의 입구로 기능하며 통영의 안과 밖을 나누는 상징적 지점이었습니다. 예부터 통영 사람들은 이 고개를 넘는 것을 ‘통영을 떠남’으로 여겼고, 다시 넘는 것은 ‘귀향’이라 여겼습니다. 그 인식은 지금도 이어져, 고개 너머로 보이는 하늘과 바람, 물빛에서 고향의 기운을 느끼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원문고개는 통영 사람들의 마음속 ‘심리적 국경’이자, 물리적 이동의 출발점이자 도착점이었습니다.
1950년 8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은 부산 최후 방어선을 우회하기 위해 통영을 점령하고 거제도로 상륙하려 했습니다. 이에 맞서 한국 해병대는 8월 17일, 해군함정과 목선을 동원해 사상 첫 단독 상륙작전을 감행했고, 2일간의 치열한 백병전 끝에 통영을 탈환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원문고개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현장이었고, 해병대는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대한민국의 서측방을 방어해냈습니다. 정부는 이 승리를 기려 1980년 이곳을 전적지로 지정하고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공원 깊숙한 곳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충혼탑이 세워져 있으며, 시인 초정 김상옥 선생이 남긴 비문이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한 인간의 목숨은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시작으로, 목숨을 초개같이 바쳐 조국을 구한 젊은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초정의 문장은 비단 문학적 찬사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아 있는 존재로서 무엇을 기억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묻는 울림으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