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학에 전념한 백운 선생의 고결한 삶의 터전
백운서재는 조선 후기 실학자 백운암 선생의 학문과 인격을 기리기 위해 남겨진 유적지입니다. 선생의 자는 문언이며 본관은 제주, 정조 7년(1783)에 출생하였습니다. 어릴 적부터 형 시양과 함께 학문에 정진하였고, 출세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학문에 몰두하여 성리학과 실학의 탐구에 전념하였습니다. 특히 천인 관계와 이기론에 대한 깊은 연구로 후학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선생은 천암산 기슭에 조촐한 서재를 짓고 강당을 열어 많은 제자들에게 학문을 전수하였습니다. 그는 재물이나 세속을 탐하지 않고 성실한 자세로 후학을 지도하였으며, 단정한 몸가짐과 정성어린 가르침으로 교육자적 모범이 되었습니다. 주변에 샘물을 끌어와 조그만 연못을 만들고 정원을 가꾸는 등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학문과 예술을 함께 즐겼습니다.
선생은 『역대상도해』, 『중용성명도』, 『몽대인기』, 『혹인문답』 등 여러 저서를 남겼고,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우주론과 인성론에 대한 깊은 사유를 펼쳤습니다. 헌종 7년(1841) 타계 후 제자들이 인평동 국재 언덕에 유택을 조성하고 장례를 치렀으며, 강당 뒤에는 사우를 세워 제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도 해마다 음력 8월 하정일에 유림에서 채례를 모시고 있으며, 서재 일부와 정원, 연못, 대나무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백운 선생과 관련한 일화 중에는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 통제영에서 군점행사를 진행하던 날 학동들이 수조 장면을 보고 싶어하자, 선생은 연못가에 앉힌 학동들 앞에서 계수나무 잎을 훑어 물 위에 뿌리자 잎사귀들이 전선으로 변해 정연한 대오를 이루며 수조를 펼쳤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는 선생의 학문적 통달과 정신적 깊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