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출신 서양화 1세대, 김용주의 삶의 터
김용주는 1910년 10월 14일 통영시 태평동 617번지에서 태어났으며, 한말 인동도호부사를 지낸 김진현의 증손입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유복하게 자랐습니다. 1926년 통영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경 메이지학원 중학부를 수료하고 카와바타 미술학교 양화부에 입학, 1934년 졸업했습니다. 이후 인체 연구를 중심으로 6년간 표현 기법을 탐구하며 서양화에 대한 이해를 넓혔습니다.
귀향 후 그는 항남동에 화실을 열고 창작 활동을 이어갔으며, 통영 지역 예술인들과 교류하며 문화 중심 인물로 자리잡았습니다. 유치환, 장응두, 정찬진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그의 화실을 드나들었고, 사람 좋은 성품과 유머 감각으로 널리 사랑받았습니다. 1940년 조선미술전람회에 <회상>, <외출>이 입선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후진 양성에 힘쓰며 통영 미술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1953년, 피난 온 이중섭이 산양면 김용주의 집에서 머물며 작품 활동을 이어갔고, 이후 성림다방 개인전을 함께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김용주는 데생을 중시하며 예술의 진실성을 강조한 화가였고, 누드와 인물화를 즐겨 그렸습니다. 병을 얻은 이후에도 꾸준히 창작을 이어가던 그는 1959년 1월 15일 부산에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김용주는 생전 약 300여 점의 작품을 남겼으며, 일부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의 고향인 통영에는 남아 있는 작품이 많지 않아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의 생가 인근에는 현재 '모아넷'이라는 상호가 있는 건물이 있으며, 건물 앞에는 김용주가 살았던 곳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