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문학과 삶이 교차한 고갯길, 서문고개
서문고개는 문화동과 명정동을 가르는 고갯마루로, 과거 통영성의 서문이 있던 곳에서 유래해 ‘서문고개’ 또는 ‘서문까꾸막’이라 불립니다. 문화동 간창골에서 충렬사나 명정샘으로 향하려면 반드시 이 고개를 넘어야 했으며, 폭이 좁아 마주 오는 사람 중 한 명은 비켜 서야 할 정도로 협소한 길이었습니다. 현재는 일부 구간이 통영문화원 옆을 관통하는 2차선 도로로 확장되어 원형이 훼손되었지만, 나머지 구간은 옛 모습 그대로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소설가 박경리의 작품 속에서 서문고개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김약국의 딸들』에서는 주요 사건이 이 고개를 오르내리며 전개되고, 『토지』에서도 이 고개는 배경의 하나로 자주 등장합니다. 박경리에게 서문고개는 단지 이야기 속 배경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의 현장이기도 했습니다.
박경리는 서문고개 안쪽의 후미진 집에서 태어나, 단출한 살림을 꾸리던 어머니와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집을 떠나 새살림을 차렸고, 박경리는 어머니와 단둘이 이 고개에서 살아가며 책을 손에서 놓지 않던 소녀로 자랐습니다. 당시 그녀는 세병관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 번 이 고개를 넘었으며, 이후 시집을 갔다가 남편과 사별한 뒤에도 고향 서문고개는 그녀의 삶의 배경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서문고개는 소설뿐 아니라 시에도 등장하는 길입니다. 시인 백석은 사랑했던 여성 ‘난’을 만나기 위해 이 고개를 넘어 명정골로 향했다고 전해지며, 그 시적 정서 역시 서문고개의 풍경에 스며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