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을 향한 그리움, 한 송이 시로 피어나다
탁 트인 통영 남망산 조각공원 한켠, 일제강점기 경찰서장의 관사가 있었던 자리에 지금은 시인 김상옥의 대표작 '봉선화' 시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1997년 조성된 남망산야외조각공원으로, 겨울이면 핏빛 동백꽃과 아름드리 해송이 어우러지는 경관 속에서 시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갈림길에 세워진 표지판을 따라가면 쉽게 도착할 수 있는 이 시비는, 통영과 김상옥 시인의 깊은 인연을 상징하는 문화적 장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봉선화’ 시조는 단출한 시어 속에 한국인의 전통적 정서를 절묘하게 녹여낸 작품입니다. 비, 장독간, 손톱, 누님, 꽃물, 실 등의 소박한 소재는 그 자체로 시인의 유년기 기억과 가족애,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상징합니다. 특히 어린 시절 누님의 손에 꽃물을 들이던 기억은 따뜻한 감성과 함께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정서를 자아냅니다.
이 시는 시인이 1936년 독서회사건으로 통영경찰서에 투옥되었을 당시 면회를 온 누님의 애틋한 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후 초정은 누님이 살고 있는 함경북도 청진으로 향하게 되고, 생전 처음 겪는 혹독한 추위와 낯선 환경 속에서 고향 통영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지며 ‘봉선화’가 태어나게 됩니다. 시 속의 정서는 누님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고향에 대한 향수로 가득합니다.
김상옥은 1920년 통영에서 태어나 1938년 『문장』을 통해 등단했습니다. 『봉선화』 외에도 『초적』, 『고원의 곡』, 『목석의 노래』 등 다수의 시조집을 남긴 그는 평생 시조의 서정과 미학을 탐구한 대표적 시인이었습니다. 2007년 3월 시비 제막식에는 이어령, 김남조, 이근배, 허영자, 김성우 등 전국의 주요 문인들이 참여해 그의 문학적 업적을 기렸습니다.
이 시비는 경상남도의 지원과 통영시의 주도로 세워졌으며, 통영 문학정신을 상징하는 주요 명소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조용히 시비 앞에 서면, 그 속에 담긴 고향의 향기와 누님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시비가 놓인 자리에서 바라보는 한산대첩의 바다 또한 시의 울림을 더욱 깊이 있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