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수 시인의 ‘꽃’, 고향 통영에 피어나다
김춘수 시인의 시비가 자리한 남망산 입구의 쌈지 터는, 시인의 유년 시절 추억이 깃든 고향의 공간입니다. 시비가 처음 설치된 장소는 항남동 간선도로변이었으나, 남망산으로 오르는 초입으로 옮겨져 이제는 시인이 바라보던 바다, 들리던 갈매기 소리, 머물던 배들이 보이는 그 풍경 안에 존재합니다. 시인의 생가에서 엎드리면 닿을 거리, 그가 아침마다 처음 마주했을 푸른 물빛과 파도소리가 여전한 이곳은 시가 태어난 감성의 원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꽃’은 김춘수 시인의 대표작이자, 국내 시인들이 가장 애송하는 시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첫 구절로 시작해 ‘그는 나에게로 와서 하나의 꽃이 되었다’는 표현은 인간 존재의 의미와 관계의 아름다움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이 시는 시인과 대중 모두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수많은 낭송회와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통영에서는 이 감동을 직접 마주할 수 있도록 ‘꽃’ 전문이 새겨진 시비를 세웠으며, 김춘수 시인의 자필 글씨로 새긴 점도 의미를 더합니다.
‘꽃’ 시비는 통영시 예산이 아닌 시민 주도 모금으로 세워졌습니다. ‘꽃과 향기’라는 시민단체와 지역 신문사의 주도로 ‘꽃 한 송이’라는 모금운동이 펼쳐졌고, 초등학생부터 어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이 참여했습니다. 시비 뒷면에는 모금에 참여한 이들의 이름이 동판에 새겨졌으며, 이 시비를 바라보며 쓰다듬는 이들 중 다수는 시비 건립에 함께한 시민일 것입니다. 이는 한 편의 시가 공동체 속에서 얼마나 깊은 정서적 울림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사례입니다.
김춘수 시인은 시 ‘꽃’의 시상 배경으로 유년기의 강렬한 인상들을 언급했습니다. 통영 장개섬의 바다, 새들을 갈매기라 착각했던 동심, 어머니와 함께한 저녁놀의 풍경, 봉선화가 피어있던 담장 아래의 추억 등이 한 겹 한 겹 쌓여 ‘꽃’이라는 시가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시는 단순한 문학적 형상이 아닌, 개인의 체험과 감정, 그리고 고향이라는 정서적 기반에서 태어난 살아 있는 언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