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대 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긴 박경리 선생이 토지로 돌아가신 지 벌써 2년이 되었고, 2주기였던 지난 5월 5일 통영에 선생의 기념관이 개관하여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선생의 묘소공원 아래에 터를 잡은 소담한 건물은 ‘버리고 갈 것만 남아 참 행복하다’라는 생전의 삶에 대한 가치관을 반영하듯 수수하고 정갈하다. 황토빛 벽돌로 건물 주요 외벽을 마감하고 있고 기념관 1층 앞뜰과 뒤뜰, 건물 옥상에도 흙을 밟을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한 것은 고인의 뜻을 기리는 바가 아닌가 싶다.
기념관은 산양관광일주로를 오른쪽으로 돌 경우 신봉삼거리에서 우회전, 왼쪽으로 돌 경우 산양읍 초입에서 좌회전을 해 천천히 차를 몰아도 약 5분이면 당도한다. 찾은 날은 마침 안개비가 흩뿌려 곳곳이 촉촉하고 드라이브마저 상쾌하다.
2층으로 된 기념관은 1층이 사무공간이고 2층에 전시실이 집중되어 있다. 2층 입구부분.
전시실은 관람자의 동선에 따라 자연스럽게 선생의 생애를 보여주고, 토지, 김약국의 딸 등 주요 작품과 관련된 유품과 자료들을 보여주며 선생의 문학세계로 관람자를 안내한다.
‘토지’의 일본어 원고
‘김약국의 딸들’의 배경이 된 통영 일대의 모형 및 1963년과 2005년 드라마로 방영되었던 김약국의 딸들에 관한 자료
선생의 방을 재현해 놓은 ‘작가와의 만남’관
사람들은 수월하게 행과 불행을 얘기한다. 어떤 사람은 나를 불행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나를 행복하다 한다. 전자의 경우는 여자의 운명을 두고 한말이겠고, 후자의 경우는 명리를 두고 한말이 아니었나 싶다.
-2003년 에서
작가로서 또한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손주들 재롱에 즐거워하는 보통 사람으로서 박경리 선생의 모습이 전시관 곳곳에 잔잔히 펼쳐진다.
가장 ‘박경리스러운’ 사진이라 스스로 생각한 이 사진속에서 선생은 행복한 것 같다. 행, 불행은 당사자나 제삼자나 자신이 느끼는 주관에 달려 있는 것이니까…
박경리 선생의 본명이 ‘박금이’였다는 사실은 이번에 새로 알게 되었다는…
선생의 생전 인터뷰 모습과 육성을 들을 수 있는 소상영관. 잠깐 앉아 쉬면서 선생을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다.
가운데가 텅빈 중정 구조로 지어진 전시관의 옥상은 흙과 풀을 밟을 수 있는 시골집 마당같고, 1층부터 올라온 홍송 3그루가 날씬한 몸매를 뽐내며 자라고 있다.
기념관 뒤뜰은 텃밭을 일구며 거기서 나온 무공해 야채를 후배 문인들에게 먹이시던 선생의 원주에서의 생활을 옮겨 놓으려 한 모양이다.
기념관이 묘소 바로 아래터에 지어진 것은 기념관을 둘러보고 꼭 묘소도 들렀다 가라는 배려가 아니겠는가? 2주기가 지난 바로 다음날이라 참배객들이 헌화한 꽃들이 즐비하고, 삶의 끈을 놓는 순간까지도 놓지 않으셨던 담배도 보인다.
선생의 묘지가 있는 신전리 언덕은 안개에 싸여 희끄무레 한데, 발밑 쑥갓꽃은 안개비를 머금어 싱싱한 생명의 힘을 함초롬히 뽐내고 있다.
자연과 어울려 살았던 선생의 삶은 살아 생전 선생의 손으로 가꾸었지만 육신이 자연으로 돌아간 지금부터의 선생의 삶은 이제 그를 기억하는 후배들이 가꾸어 갈 것이다. 그것은 선생이 생각한 가장 ‘완벽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