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매력을 보고, 즐기다.
통영의 매력을 보고, 즐기다.
세병관으로 오르는 도로 오른쪽에 서 있는 돌로 만들어진 장승(石長丞)으로, 통영방언으로 장승을 ‘벅수’라고 한다.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운 목상(木像)이나 석상(石像)을 말하며, 마을의 수호신, 경계표지, 이정표(里程標)등의 역할을 했다. 문화동 벅수는 일반적인 장승이 남녀 한 쌍으로 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남장승 하나 뿐인 독벅수로 몸 앞부분에 土地大將軍(토지대장군)이라 음각되어 있고, 등 뒤에는 1906년 8월에 동락동에서 세웠다는 기록(光武十年八月 同樂洞 立)이 음각되어 있다. 당시 동락동 주민들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동남방이 허하다 하여 이를 보허(補虛)하고 진압하기 위하여 세운 비보장승 이면서 동시에 마을의 수호와 벽사(薜邪), 축귀(逐鬼), 방재(防災), 진경(進慶)의 기원이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험상궂으면서도 미소를 머금은 표정은 민간의 독특한 장승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
세병관으로 오르는 도로 오른쪽에 서 있는 돌로 만들어진 장승(石長丞)으로, 통영방언으로 장승을 ‘벅수’라고 한다.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로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운 목상(木像)이나 석상(石像)을 말하며, 마을의 수호신, 경계표지, 이정표(里程標)등의 역할을 했다. 문화동 벅수는 일반적인 장승이 남녀 한 쌍으로 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남장승 하나 뿐인 독벅수로 몸 앞부분에 土地大將軍(토지대장군)이라 음각되어 있고, 등 뒤에는 1906년 8월에 동락동에서 세웠다는 기록(光武十年八月 同樂洞 立)이 음각되어 있다. 당시 동락동 주민들이 풍수지리설에 따라 동남방이 허하다 하여 이를 보허(補虛)하고 진압하기 위하여 세운 비보장승 이면서 동시에 마을의 수호와 벽사(薜邪), 축귀(逐鬼), 방재(防災), 진경(進慶)의 기원이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험상궂으면서도 미소를 머금은 표정은 민간의 독특한 장승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보기 드문 독벅수라는 면에서 민속자료로서 그 가치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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