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 김용익·김용식 기념관
한국 외교계의 거목이자 전설로 추앙받은 김용식(1913~1995)전 외무부장관과 ‘마술의 펜’, ‘펜의 마술사’로 극찬을 받은 세계적인 소설가 김용익(1920~1995)을 기리는 기념관이 개관(2013.4.17) 되었다.
두 형제가 태어나고 자란 통영시 주전3길 18 (태평동 22번지와 23번지 2필지), 부지면적 356㎡의 생가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으로 형제를 동시에 기리는 기념관은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례가 흔치 않다. 이것은 두 형제를 낳은 가문의 자랑이자 긍지이기 이전에 통영이 왜 예향인지, 통영 문화예술의 깊고 높은 예술성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일인 것이기도 하다.
이 기념관은 김용식 전 외무부장관의 장남인 김수환 목사(미국 거주) 부부가 두 형제의 생가를 통영시에 기부채납 함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김용식과 김용익 두 형제가 가는 길은 달랐어도 그들이 맡은 역할과 하는 일의 성취에 있어서는 각자 한 일가를 이루었다.
외교관의 길을 걸은 김용식은 헌칠한 키에 깔끔하고 수려한 외모와 유창한 외국어로, 세계 외교계의 신사로 정평이 나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외교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난 힘없고 가난한 신생 대한민국의 외교적 대변자였다면, 내 동생 용익은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한국 정서를 세계무대에 당당히 알린 작가로 후세는 김용익을 더 오래 기억할 것”이라고 동생 용익의 문학을 높이 간파하고 있었다. 당시 김용익과 그의 소설이 국내 문학인들에게 낯설었고 심지어 그의 고향에서조차 그의 이름을 잘 모르고 있던 때였다.
김용익은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특히 작품을 쓰는 시간이외에는 산책과 고독을 즐겼고 문학인 특유의 비사교적이고 비현실적인 성품과 부당,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성정으로 남들과 잦은 교류가 없었으며 더구나 국내에서 제자나 지인들이 많지 않은 탓에 우리나라 문학계에서 점점 잊혀져가고 있음이 안타깝다.
김용익은 통영초등, 중앙중학을 거쳐 일본 동경 아오야마(靑山)학원 영문과를 졸업한다. 그의 나이 23세 때인 1943년 부친이 거제 옥포의 어장 집 규수에게 장가를 보내려고 하나 자신의 이상형이 아니라며 쌀 10되를 가지고 절로 도망간다. 당시 쌀이 귀한 일제 강점기 때라서 머물던 절의 스님이 쌀을 훔쳐 감으로 아버지에게 굴복하고 할 수 없이 장가를 가게 된다.
25세 때 해방과 동시 미군통영관 겸 부산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1948년1차 도미하여 남플로리다대학교, 캔터키대학교, 아이오와대학교 대학원 소설창작부에서 수학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 3개국의 말을 공부하게 된다.
그의 일생은 별로 가진 것도 없었고 교수 월급에 얼마간 출판된 책에서 나온 인쇄비로 비교적 청빈하게 사신 편이었다. 그의 책은 미국과 세계 여러나라의 문학계에서 인정을 받아 출판되었으나 어느 것 하나도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없었다. 그는 베스트셀러의 작품을 혐오하였기에 아예 그런 작품 자체를 쓸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국내의 고려대학에 재직 중 이화대학에도 강사로 나갔을 때 그의 큰 딸이 이화대학입학시험에 떨어지고 만다. 이화대학은 교수자녀는 입학에 특전을 주는 경우가 있었다. 뒤에 이 사실을 안 대학 총장이 김용익 교수를 불러 자기 딸이 이화대학에 응시를 했으면 발표 전에 왜 좀 미리 알려주지 안했느냐고 하자 오히려 화를 내며 이 학교는 시험에 떨어진 학생도 교수 딸이면 붙여주는 학교냐고 오히려 총장에게 호통을 치고 나온다. 또 자기과목을 택한 한 이화대생이 학기말 페이퍼를 기한 내에 제출하지 못하고 며칠 뒤에 페이퍼를 집으로 가져오자 학생이 보는 앞에서 그 페이퍼를 찢어버리며 학교에서 내지 않고 왜 집으로 가져 왔느냐고 야단을 쳐 보낸다. 그가 부산대학에서 가르칠 때에는 어느 학생이 시험을 잘 못 치르고는 케이크를 사들고 집으로 왔다. 마침 그가 부재중이어서 케이크와 학생이름을 남겨 놓았다. 뒤에 이 사실을 알고는 그 학생의 시험지를 찾아 다시 검토를 해 보고는 오히려 점수를 더 깎아버린다. 그의 성격이 어떤지를 알게 하는 일화다.
그는 남에게는 물론 자신의 외모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으며 평소에 입는 옷도 남에게 오해를 살만하였다. 그는 피치버그 듀케인 대학에서 가르칠 때 한번은 구내 경찰이 웬 거지같은 사람이 학교 안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는 그를 구내 파출소로 끌고 가서 “무엇 하는 사람이냐?”고 묻자 “내가 이 대학 교수다.”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던지 이름을 묻고는 즉시 교무실에 전화로 확인을 하고는 고개를 흔들며 보내 주었다고 한다. 그 다음 주일 김용익의 허름한 모습과 기사가 대학신문에 특집으로 나간 후 그 경찰이 구내에서 그를 발견하고 깍듯이 경례를 부치더라는 일화가 유명하다.
그는 술도 담배도 안했고 신문도 TV도 시청하지 않았다. 그는 한 평생을 거의 미국에 살면서도 운전면허는 커녕 자동차도 없이 언제나 버스만 타고 다녔다. 그 흔한 크레딛 카드 하나 없고 시계도 없이 살았다.
그의 작품은 슬프지만 소설의 끝은 체념이나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인간에 대한 신뢰나 희망으로 승화되며 갈등구조는 해소되고 인간관계는 따뜻한 인정과 믿음으로 회복된다. 가령, ‘꽃신’에서는 백정이라고 딸을 주지 않았던 꽃신 만드는 노인과 주인공이 노인의 사후 아름다운 회상으로 화해하며, ‘밤배’에서는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의 진짜 마음을 발견하고는 뱃고동 소리보다 더 큰 울음이 터질까봐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는 욕설과 폭력과 관능이 판치는 요즘 문화 현장과, 자기 몫 찾기와 계층 간 갈등,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확대돼 가는 사회현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인의 심성이요 덕목이라 할 것이다.
그의 영어 문장은 현지인들에게 ‘마력적’이라고 까지 평가받았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 등 메이저신문과 출판사 등이 이 동양인이 구사하는 영어에 깊이 매료돼 예술성과 더불어 이 점을 강조한 것이 그렇다.
한국 작품을 많이 번역했던 성공회 리처드 러트 신부는 1964년 2월 그 당시 미국에서 각각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던 펄벅의 ‘살아 있는 갈대’와 김용익의 ‘겨울의 사랑’을 비교하는 글을 조선일보에 기고, “펄벅 여사의 유명한 소위 간단한 문체는 때때로 문법적으로 부족하고 흥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다. 효과를 찾을 때는 늘 형용사에 의지한다. 그러나 김교수의 문체는 더 복잡한 성질이며, 재미있는 명사가 풍부하고, 동사의 멋진 채용이 있다.”며 “김교수는 원초적으로 시인이 아닐까”고 했을 정도다.
서강대 영문학과 주임교수였던 존 번브락 씨는 1964년 3월 고려대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김교수는 영문을 한국 고유의 형태로 변모시켜 글을 썼다. 나 같은 미국인에겐 아주 특이한 감이 들게 함으로써 오히려 한국적 정취를 풍겨준다. 또 그의 문체는 시적인 운치를 지닌다. 마치 화살과 같이 깨끗하고 예민하게 서술했다.”고 평가를 했다.
■ 김용익의 주요 작품으로는
단행본
- 한국의 달 (Moon of korea)
1959년 대한공론사 발행, 한국의 세시 풍속을 다룬 논픽션
- 행복의 계절 (The Happy Days)
1960년 미국의 리틀 브라운에서 출판된 후 영국, 독일, 덴마크, 뉴질랜드에서 출판.1960년
뉴욕타임즈, 미국 도서관협회 선정 우수 도서. 1960년 독일 도서관협회 선정 청소년 최우수도서.
- 뒤웅박 (The Diving Gourd)
1962년 미국 뉴욕의 가장 권위 있는 출판사 알프레드에이 노프에서 출판된 후, 인도에서도 출간.
- 푸른 씨앗 (Blue In The Seed)
1964년 리틀 브라운에서 출간.
1966년 독일 우수도서로 선정, 덴마크 교과서에 수록.
1967년 오스트리아 정부가 수여하는 청소년명예상 수상.
- 겨울의 사랑 (Love in Winter)
1970년 미국 더블데이에서 출판(단편집)
- 양산골에서 온 신발 (The Shoes from Yang San Valley)
1972년 미국 더블데이에서 출판(중편)
단편들
- 꽃신 (Wedding Shoes)
1956년 6월 미국 하퍼스 바자에 게재된 후, 가장 아름다운 단편소설 중 하나로 세계 각국 에19번 소개
됨( 노벨 문학상 후보에 까지 오른 계기)
뉴요커, 마드모아젤, 양키, 아트란틱, 등 여러 월간지와 시와니 리뷰, 허드슨 리뷰, 트라이쿼 터리, 등
여러 문예지에 실렸으며,TV, 영화, 발레 작품 등으로도 소개.
- 변천 (From Below the Bridge)
1958년 ‘최고 미국 단편’에서 외국인이 쓴 우수 단편으로 선정
- 막걸리 (The Village Wine)
1976년 ‘최고 미국 단편’에서 외국인이 쓴 우수 단편으로 선정
- 해녀 (The Sea Girl)
1978년 미국 중고등학교 영문학 교과서에 수록
- 종자돈 (The Seed Money)
1967년 우리나라에서 영화화 됨
우리나라에서는 문학사상, 현대문학, 사상계, 세대, 세계의 문학, 신동아, 문예중앙, 월간조선 등에 여러 편의 작품이 상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