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정거리
김성우는 그의 저서 『문화의 시대』에서 ‘문화예술인의 이름이 붙은 길 위를 걷는 것은 문화를 가까이 하는 지름길이다.’고 말했다. 통영에는 예술가들의 이름을 딴 거리의 이름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통영이 낳은 위대한 시인, 우리나라 시조문학계의 북두칠성 같은 김상옥의 호를 딴 초정거리이다. 초정거리를 이곳 사람들은 ‘오행당 골목’이라 하는데 이 거리에 한 때 유명했던 ‘오행당 한의원’이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골목길은 그냥 흔히 부르기 쉬워 골목길이지 예사 골목길이 아니다. 한 시절 이 골목의 거리는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시대, 해방이후 최근까지도 통영 최고의 번화가였다. 충무시와 통영군이 합쳐 통영시가 되면서 통영시는 남해안의 수산중심도시, 관광과 문화예술의 중심도시로 변모하면서 인구의 증가와 도시개발로 상권이 북신, 무전, 죽림 등지로 분산 되어 차츰 한가한 거리로 변했으나 광주시에 충장로가 있고, 부산에 광복동이 있고 서울에 명동이 있었다면 통영에는 이 오행당골목이 있었다.
1920년대 이 거리는 배가 닿는 선창이었다. 그 시절 약 20여 개의 갓 점방이 있었는데 이 거리에 초정의 생가가 있다. 당시 통영의 주산업은 어업이었고 어업이 흥성했으니 선창에는 돈이 굴러다녔다. 자연 이 거리에는 사람과 돈이 흥청거렸을 것이고 통영에 와서 돈 자랑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그래서 생겨난 말일 것이다.
초정의 집안은 아주 가난했다. 가난했기에 초정은 월사금도 못 내고 학교에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동 시대 같은 또래였던 김춘수나 김용익이 외지로 유학을 갔을 때 초정은 겨우 오늘날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그런 그가 훗날 우리나라 시조문학계의 거대한 산맥으로 군림했기에 그를 기리려고 통영시는 2007년 12월 4일 초정이 자라고 뛰놀았던 그 골목길, 지금의 중앙동 항남1번가를 초정거리로 명명한 것이다

‘초정거리’로 지정된 곳은 항남동 오행당 골목 입구의 명성레코드에서 보경유리상회까지 약 180m 구간이다. 양 입구에는 돌과 주물로 만든 표지석 2개가 세워졌고, 거리 바닥에는 그의 시와 그림을 옮긴 동판 아트타일이 깔렸다.
초정거리 초입에는 봉선화 시비와 벽화가 길손을 반긴다.

이 거리는 초정의 유년의 아픔이 살아있는 거리다. 초정의 시혼이 배태된 거리다.
명성레코드, 오행당, 희락장, 동진여인숙, 충무도서 등 몇 십 년을 꿋꿋이 버텨온 전통의 빛바랜 간판이 정겨운 초정거리! 이 거리를 걸어가 보노라면, 초정의 절창인 봉선화를 입에서 주저리주저리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