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매력을 보고, 즐기다.
통영의 매력을 보고, 즐기다.
세병관(洗兵館) 경내 수항루 뒷편 팔작지붕 비각 안에 있는 두룡포기사비(頭龍浦記事碑)는 이경준 제6대 통제사(統制使)가 우리 고장(당시 두룡포)에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설치한 치적(治績)이 새겨진 통영의 뿌리를 밝히는 사적비이다. 이 비는 조선 인조 3년(1625) 구인후 제19대 통제사가 세웠으며, 당시 창원대도호부사 박홍미가 지은 비문의 내용은 이 비를 세우게 된 경위, 이경준 통제사의 가문과 약력, 통제영을 두룡포로 옮기게 된 이유, 그리고 이경준 통제사의 혜안과 업적 등을 기록하고 있다. 이 비는 원래 통제영 남문 밖의 바닷가 큰길가에 세워져 있었으나 광무 8년(1904) 이학재(李鶴在) 이승주(李承周) 두 사람이 세병관(洗兵館) 앞뜰에 옮겨 세웠다. 1996년 4월 12일 지금의 자리에 새로 비각을 짓고 하대를 새로 만들어 옮겨 세움으로써 1세기만에 비신의 하부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수는 운문(雲紋) 위에서 용 2마리가 ...
세병관(洗兵館) 경내 수항루 뒷편 팔작지붕 비각 안에 있는 두룡포기사비(頭龍浦記事碑)는 이경준 제6대 통제사(統制使)가 우리 고장(당시 두룡포)에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설치한 치적(治績)이 새겨진 통영의 뿌리를 밝히는 사적비이다. 이 비는 조선 인조 3년(1625) 구인후 제19대 통제사가 세웠으며, 당시 창원대도호부사 박홍미가 지은 비문의 내용은 이 비를 세우게 된 경위, 이경준 통제사의 가문과 약력, 통제영을 두룡포로 옮기게 된 이유, 그리고 이경준 통제사의 혜안과 업적 등을 기록하고 있다.
이 비는 원래 통제영 남문 밖의 바닷가 큰길가에 세워져 있었으나 광무 8년(1904) 이학재(李鶴在) 이승주(李承周) 두 사람이 세병관(洗兵館) 앞뜰에 옮겨 세웠다. 1996년 4월 12일 지금의 자리에 새로 비각을 짓고 하대를 새로 만들어 옮겨 세움으로써 1세기만에 비신의 하부가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수는 운문(雲紋) 위에서 용 2마리가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상으로 조형미가 특히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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