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매력을 보고, 즐기다.
통영의 매력을 보고, 즐기다.
1991년 12월 23일 경상남도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된 통영성은 왜적을 방어하고 거주지와 생업지를 갈라 놓는 두 가지 목적으로 1678년(숙종 4)에 통제사 윤천뢰(尹天賚)가 축성하였다. 해발 174.2m, 높이 4.7m, 너비 4m, 둘레 약 3,660m이다. 북문 북쪽의 여황산 기슭에서 서문 북쪽의 산기슭까지 여황산 양쪽 등성이 약 1km는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이다. 1985년 통제영이 없어지고 일제강점기에 성벽과 문루가 훼철되어 지금은 토성의 유지와 석성의 일부분만 남아 있다. 옛 통영성에는 동서남북 4대문과 2암문, 그리고 동·서·북쪽에 3포루가 있었다. 동문은 홍예문(虹霓門)으로 축성할 때 함께 지었는데, 1748년 통제사 장태소(張泰紹)가 신흥문(新興門)이라는 편액을 문루에 걸었고, 1792년 통제사 이윤경(李潤慶)이 고쳐 지으면서 춘생문(春生門)이라 하였다. 서문 역시 홍예문으로 축성 때 함께 지었는데 1790년 통제사 신응주가 고쳐 짓고 금숙문(金...
1991년 12월 23일 경상남도기념물 제106호로 지정된 통영성은 왜적을 방어하고 거주지와 생업지를 갈라 놓는 두 가지 목적으로 1678년(숙종 4)에 통제사 윤천뢰(尹天賚)가 축성하였다. 해발 174.2m, 높이 4.7m, 너비 4m, 둘레 약 3,660m이다. 북문 북쪽의 여황산 기슭에서 서문 북쪽의 산기슭까지 여황산 양쪽 등성이 약 1km는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이다.
1985년 통제영이 없어지고 일제강점기에 성벽과 문루가 훼철되어 지금은 토성의 유지와 석성의 일부분만 남아 있다. 옛 통영성에는 동서남북 4대문과 2암문, 그리고 동·서·북쪽에 3포루가 있었다. 동문은 홍예문(虹霓門)으로 축성할 때 함께 지었는데, 1748년 통제사 장태소(張泰紹)가 신흥문(新興門)이라는 편액을 문루에 걸었고, 1792년 통제사 이윤경(李潤慶)이 고쳐 지으면서 춘생문(春生門)이라 하였다. 서문 역시 홍예문으로 축성 때 함께 지었는데 1790년 통제사 신응주가 고쳐 짓고 금숙문(金肅門)이라 하였다. 남문도 홍예문으로 축성시에 지었는데 일명 청남루(淸南樓)라 하였다. 1843년 통제사 허계(許棨)가 중수하였다. 북문은 통영성을 축성할 당시에는 문루가 없었으나 1771년 통제사 원중회(元重會)가 문루를 짓고 이름을 공북루(拱北樓)라 하였는데, 일명 의두문(依斗門)이라고도 하였다. 동·남의 두 암문은 성을 쌓을 때 함께 만들었는데 문루가 없었다. 동암문은 일명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불렸는데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항상 잠가 두었다고 한다. 3포루는 1694년 통제사 목림기(睦林奇)가 세웠다.
통영성 외에도 통제영시대에 축서하였거나 이 시대에 사용되어 온 성으로 산양읍에 당포성, 도산면에 오륜성, 광도면에 원문성, 사량면에 사량성 등이 있었다. 아이들을 동반해 가족과 함께 통영성지를 들러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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