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특정한 목적에서든 걷는 것을 즐겁다고 여겨본 일이 최근 있는가?일상 다반사의 당연한 것이었던 걷기가 90년대 시작된 마이카붐이 가져다준 편리함에 밀려 불편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도 차를 이용하게 되고, 차가 닿지 않는 부분의 어쩔 수 없는 걷기는 ‘노동’이 되었다. 최근 제주도의 올레길 걷기나 지리산의 둘레길 트레일링 등이 이슈가 되는 것은 편리함이 앗아간걷기의 즐거움, 그 즐거움을 노동으로 만들어 버린 수많은 찻길에 대한 반향이 아닐까한다.
분명 사람에게 편암함을 주기 위해 만든 차와 찻길인데 막상 차가 없는 상황이 되면 지하로, 육교로, 횡단보도로 멀리 빙빙 돌아다녀야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하는 대도시에서 즐겁고 편안하게 걷기란 사실 쉽지않다. 편리함 뒤에 도사린 그 불편함의 역설을 알게된 사람들은 그러기에 올레길, 둘레길 같은 ‘즐거운 걷기’길에 열광하며 여행까지 가는 것 아닌가? 좀 제대로 걸어보자고…
여행을 가서야만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좀 약이 오르는 이야기이겠지만 통영엔 도심 한가운데 걷는 길이 있다. ^^ 물론 제주도나 지리산의 그 길들처럼 이름 난 ‘명품길’은 아니지만 어쨌든 명칭은 두구둥~~~ ‘미수동 수변산책로’
통영운하변을 따라 두사람이 나란히 걸을 정도의 폭으로 길이 약 1km에 조금 못미치는 길로 미수동 횟집거리에서 해양관광공원까지 이어진다. 최근 미수동의 연필등대 완공과 함께 일부구간이 더 확장되었음에도 길이가 짧아 조금 아쉽지만 강변같은 해변을 걸으며 한쪽으론 차들이, 다른 쪽으론 배들이 지나다니는 길 한 가운데를 걷는 경험을 어디에서 해볼 것인가?
기존의 산책로 구간
최근 완공된 연필등대와 목조 데크구간
빨간 등대가 맑은 날에도 흐린날에도 선명하다.
등대 앞에서 남망산쪽을 바라보며…
산책로의 끝은 해양관광공원으로 연결된다. 모든 길이 바다를 끼고 있어 시간이나 목적지 생각지 말고 찬찬히 여유를 즐겨보기를… 그래봐야 30분이면 되니까.
연필등대 부근에서 바라본 통영운하의 야경
충무교에서 내려다 본 통영운하와 미수동 수변산책로의 야경
가장 느린 이동 방법인 걷기는 도시의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차를 타면 빠르게 많은 것을 보기는 하지만 그 기억의 휘발성 또한 아주 강해 빠르게 잊혀진다. 느리게 적게 보는 것 같아도 결국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는 것은 천천히 걸으며 보고 느낀 것들이라는 걸 여행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 본 사람은 공감할 것이다.
겨울비가 제법 축축히 내림에도 날씨가 포근하여, 비가 갠 오후에 다시 수변산책로를 걸었다. 비에 씻겨진 공기가, 말감히 세수를 한 배들이, 야트막한 산에 걸쳐진 해무가 길동무가 되어주었고, 나는 마치 ‘걷기 위해’ 일부러 여행 온 사람처럼 즐거웠다.
ㅇ 찾아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