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선의 성역처럼 여겨졌던 강구안에 낯선 배 두 척이 어느 날 홀연히 거북선 옆에 자리를 잡았다. 판옥선도 아닌 것이 고기 잡는 통구밍이도 아닌 것이 눈에 설은 이 두 척의 배는 KBS대하드라마 ‘근초고왕’의 소품으로 제작된 백제의 무역선이다.
8월부터 강구안에 전시된 이 배가 탄생하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수고가 숨어있다. 통영지기가 배 건조현장을 찾은 것은 가만히 있으면 더 더운 7월 하순경이었고, 하부 80%, 상부 60%의 공정이 진행된 상태에서 기한에 맞추기 위해 현장이 씽씽 돌아가던 바쁜 시기였다.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남지 않은 목선사업은 철선 FRP선 등의 등장으로 사양길로 접어든지 오래라 목선 건조과정을 보는 일은 쉽지않아 조선소를 찾을 때부터 호기심 백배 충전. ^^V
현장의 소장을 맡고 있는 분과 약속을 정하고 찾아간 현장은 경남조선소로 도남동의 조선소들이 모여있는 곳에서도 유심히 보지 않으면 지나쳐버릴 것 같은 소규모의 조선소였다. 수만톤~수십만톤에 이르는 현대상선에 비해 기껏해야 100톤이 넘어가지 않는 목선을 만드는 조선소니 어쩌면 당연하다. ㅡ.ㅡ;;;
40년 가까이 목선 만드는 일에 전념해온 현장소장 김행대 목수. 그간 거북선, 판옥선, 통구밍이(전통 어선) 등 수많은 목선 및 그 모형을 제작해 왔고, 할 줄 아는 일이 이것뿐이라 계속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그는 있는 그 자체로 ‘목선 명인’이라 할만 하다.
유람선터미널 내에 전시되고 있는 판옥선(사진) 및 수산과학관의 통구밍이, 강구안 한산대첩주제홍보관의 거북선 모형이 모두 김행대 목수의 솜씨다.
갖가지 공구들의 소음과 현장 곳곳의 자재들이 바쁘게 돌아가는 현장분위기를 말해주는 것 같아 오래 인터뷰하기가 미안하기까지 하다. 마침 옆에 있던 조선소 대표님을 소개해 주신다.
미래선박㈜ 경남조선소 전기철 대표. 사량도가 고향이라는 그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탔고, 커가면서 그 배를 타고 가업을 도왔단다. 그러면서 배 만드는 일에 관심을 갖고 삼천포에서 일을 배워 기술자로 변해 통영으로 돌아온 것이 19살. 그러나 불황과는 상관 없을 것 같던 목선건조기술은 철과 FRP의 등장으로 별로 쓰일데가 없는 기술이 되었고, 그때부터 배수리업을 하면서 명맥을 유지해 왔단다. 그러는 동안 FRP선 기술도 배워 현재의 이 조선소를 인수하여 운영을 하고 있다.
지금 건조하는 이 목선은 100% 목선이 아니고, 폐선될 FRP선의 뼈대와 엔진 등을 남겨둔채로 외장을 나무로 감싸 옛날 배의 형태로 복원하는 방식을 쓰는데, 고증에 의한 정확한 복원이라기보다 드라마 소품으로 사용될 배라 사용하고 난 뒤 폐기처분 하는 조건으로 폐선 사용허가를 받았다고…배가 움직이는 모습도 촬영할 것이 틀림없는데, 실제로 노를 저으려면 그 힘든 일은 누가 할꼬… 의미 없는 걱정이었다. ㅡ.ㅡ
여하간 막바지 작업 중인 배는 FRP선의 흔적을 외부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TV화면에 나올 때는 더욱 근사하게 나오리라.
드라마 ‘근초고왕’은 올해 10월부터 KBS1 채널에서 방영 예정이며, 배우 감우성씨가 근초고왕으로 분한다. 백제의 13대 왕인 근초고왕은 북으로는 평양,, 남으로는 전라도지역까지 점령, 백제의 영토를 확장하며 국가의 기틀을 튼튼히 세운 백제의 대표적 정복군주이다.
그의 일대기를 다룬 역사드라마의 주요 소품인 백제무역선이 거북선의 고장 통영에서 ‘몇 안남은’ 목선 기술자들의 땀으로 건조되었음에 작은 희열을 느끼며 조선소를 나섰다. 거북선, 판옥선이 그 당시 세계적인 조선기술로 건조된 배임을 현재에 알리고 전승시켜 대중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설 수 있는 장을 만들어보겠다는 전기철 대표의 말이 꼭 실현되기를 바라며, 더불어 누구하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도 사명감으로 힘든 일 마다 않는 현장의 목선기술자 분들에게도 파이팅을 전한다.
강구안에 전시된 백제무역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