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보다 빠르게 소매물도 선착장에서 등대섬까지 실어준 ‘경성호’는 떠나고 증류수처럼 맑은 바람에 말려지고 있는 전갱이가 마중을 한다. 어디서 잡은 건지 30cm 가까이 되는 것이 굽거나 조림을 하면 제법 먹을 게 있겠다.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의 ‘열목개’ 열목개는 간조(썰물)가 되면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에 목이 드러나 뱃길을 막았다가 만조가 되어 좁다란 목이 물에 잠기면 동서 뱃길이 다시 열린다는 뜻의 ‘열린목’에서 유래한 지명이라는 설이 있고, 두 섬을 잇는 목이 여리고 가늘다하여 ‘여린목’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의 유명세에는 이 열목개의 한 몫이 단단히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바다 한 가운데서 섬과 섬사이를 걸어서 건넌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재미있지 않은가? 하지만 이 곳은 보기보단 위험한 곳이어서 날짜에 따라 간조가 되어도 완전히 바닥이 드러나지 않고, 허리 정도까지 물이 올라와 있을 경우가 많다. ‘바다의 무서움’을 눈으로 보지 못한 내륙지역의 관광객은 물이 허리까지 차 있어도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은 이곳을 파도가 있을리 없는 잔잔한 강이나 개울쯤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 ‘대담하게’ 건너다니곤 하는데 참말로 아찔한 상황이다.
말려지고 있는 전갱이로 머리속에서 구이와 조림을 이미 만들고 있던 그 순간에, 저만치서 두 커플이 엉덩이까지밖에 물이 빠지지 않은(파도가 치면 가슴께까지 물이 넘실거시는) 열목개를 ‘다정히’ 손잡고 건너고 있었다. 이미 절반을 넘어온 이들에게 소리치는 것이 별 의미없어 나름 조마조마 지켜보고 있자니 다행히 모두 건너왔다. 가만히 다가가 나누는 대화를 듣는데니 ‘물에 들어간 순간 아차 싶었다’는 남자관광객의 말… 그리고 ‘핸드폰 다 젖겠다’라고 이어지는 말이 참 허탈했다. 5분전 상황은 핸드폰이 아니라 목숨을 걱정했어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ㅡ.ㅡ;;;;;;;
바다가 맑고 깨끗하여 ‘온순해’ 보여도 한 순간에 사람을 쓸어가는 파도의 힘이 늘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유념하여 관광을 즐기시기를 바라고 바란다. 적어도 위의 왼쪽사진처럼 무릎아래까지는 물이 내려가야 그나마 안전하고 이 때도 양쪽에서 파도가 밀려오는 특수한 지형의 이 열목개는 오른쪽 사진처럼 한길이 넘는 파도가 수시로 만들어진다. 그날도 저 하얀 파도에 일행 중 앞장서던 사람이 완전히 휩싸여 머리까지 쫄딱 젖었다.(다행히 젖기만 했다.)
2년전 저런 파도에 휩쓸려 관광객 1명이 떠내려가는 것을 또 다른 관광객이 구하려다 같이 깊은 물에 빠졌지만 바로 인근에서 조업하던 배가 구해냈다는 이야기를 그 날 소매물도 항로표지 관리소의 직원으로부터 들었다.
어쨌거나 몇 년만에 다시 찾은 등대섬은 여전히 아름다웠고, 비가 간간히 오던 날씨는 완전히 개어 여름 끝자락의 햇빛이 강렬했지만 가인(佳人)을 바라보듯 설렘을 안겨주는 이 섬의 정취는 흐르는 땀조차 기분 좋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소매물도 항로표지 관리소와 하얀등대.
통영지기와의 약속에 관리소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김옥근, 최정호님은 고정관념으로 자리잡은 동요 속 ‘등대지기’가 이미 아니었다. 동요는 그대로지만 시간은 흘러 이미 등대도 자동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관리소엔 최준기 소장까지 3명이 근무를 하지만 소장님은 출장 중 이시란다.
1917년 8월 5일 무인등대로 최초 점등이후 1940년대부터 유인등대가 되었고, 전쟁을 거치면서 파괴된 등대롤 1959년에 새로지어 관리해오다 1986년에 현재의 등대가 완성되고, 관리소와 관리사를 따로 지어 여기서 근무를 하신다고…현재 이 지역 일대에서는 거제의 서이말 등대와 소매물도 등대만이 유인등대라 마산, 진해 부터거제도, 사량도, 욕지도, 삼천포 해역까지 걸쳐있는 나머지 무인등대 및 교량표지까지 두 곳에서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워낙 관광객이 많이 찾는 섬이라 관리소에 있으면 여름엔 오히려 휴가 온 것 같은 기분을 내고, 비수기라도 가끔씩 손님에게 관광안내도 하며 지내는 두 ‘등대지기’는 생필품 조달을 위해 한 달에 2번 나가는 것이 전부라 가족과는 생이별이다.
소매물도에서 쉽게 보이던 염소와 TV에 나왔던 그 하얀 개에 대해 묻자 “한 동안은 사람보다 개 안부를 묻는 사람이 더 많았습니더.” 라며 웃는다. 헐~~~ 방송에 나왔던 ‘해피’(콜리종)는 대단한 인기여서 보고간 관광객이 먹이를 보내오며 함께 안부를 묻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 뒤 김옥근씨가 개인적으로 길렀던 ‘꼴통’(말라뮤트종, 썰매개로 알려진 말라뮤트는 힘이 대단하여 묶어두고 길렀는데 한번은 줄이 풀려 온 섬을 휘젓고 다니면서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통에 그때 놀란 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것 말고도 하는 짓 마다 골치덩어리였던 녀석의 이름이 그래서 꼴통이란다. ㅎㅎㅎ)은 국립공원지역 내에 애완동물을 키우지 못하는 법안이 만들어지면서 육지로 보냈다. 그리고 소매물도의 초목을 무차별 뜯어먹어대던 염소는 ‘소개령’(응?)이 내려 작년까지 소탕작전을 벌여 지금은 한 마리도 없단다.
사계절 중 가장 등대섬이 이쁠 때를 꼽아달라니 두 분다 가을을 추천한다. 습기 없는 선선한 북동풍이 불어오는 언덕에 구절초와 해국이 절정을 이루어 티없는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경치가 으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떠나고 싶을 때 훌쩍 떠날 수 없는 많은 이들에겐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의 등대섬도 이리 맑은 날이라면 충분히 훌륭하다.
대매물도를 향해 헤엄쳐가는 소매물도 공룡바위
등대 남쪽으로 보이는 촛대바위 주변 풍광
등대섬 정상에서…
등대섬의 끝에 서면 그 아래는 거의 망망대해다. 해질녘이 되면 바다와 하늘이 똑같이 노을빛으로 물들 것이리라.
다시 경성호 선장님과 만나 등대섬과 소매물도를 한 바퀴 돈다. 섬 안에서의 바다 경치도 훌륭하지만 섬 그 자체가 또한 아름다운 이 두 섬은 안팎을 모두 다 둘러보기가 그리 쉽지는 않으나 마을의 낚싯배를 이용해 갯바위를 이동하며 간단한 관광은 할 수 있으니 기회 닿으면 망설이지 말고 해보시길…
병풍바위와 그 주변일대
글씽이굴, 진시황의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3,000명의 선남선녀를 이끌고 이 곳까지 왔다는 ‘서불’이 바위벽에 글씨를 새겨놓은 굴이라해서 ‘글씽이굴‘ 또는 ‘글씽이강정’이라 불린다. 남겨 놓은 글씨인 즉 ‘서불과차’… 서불이 이 곳을 지나갔다는 뜻인데 왕명을 받은 사신이 남긴 ‘낙서’치고는 많이 유치하다. 이런 절경을 가진 두 섬을 보고 남긴 글이 유명 관광지나 건축물 벽에 어김없이 나오는 ‘누구누구 다녀감’ 정도의 수준이니 말이다.
멀어져가는 등대섬을 바라보는 마음이 애틋하다. 첫 휴가 나와 애인을 만나고 너무도 즐겁게 지내다 부대로 복귀하는 심정이 이랬던 것 같다.
‘전투’같았던 휴가철이 지나가고 조석으로 바람이 서늘한 이 때, 진짜 휴가를 계획하는 사람이 있다면 해국이 필 무렵 소매물도를 다녀오는 일정에 별 네 개 반. ^^
소매물도 등산로(출처 : 섬사랑 .www.nmm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