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얻어 걸렸지만 본 물건보다 덤이 더 좋아 횡재한 기분. 대매물도 당금마을을 보고 난 느낌을 요약하라면 대충 이럴 것 같다. 소매물도에 숙박을 예약할 때 동네가 어디인지도 확실히 확인안하고 검색에서 젤 먼저 뜨는 집을 예약하고 보니 대매물도라. 허거걱~~ 게다가 대항마을도 아니고 당금마을. 대략 마이 난감. ㅡ.ㅡ;;; 그러나 주황색 지붕으로 ‘단체복’을 맞춘 듯 고만고만한 집들이 모여있는 당금마을에 닿았을 때는 왠지모를 설레임이 다가왔으니…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둘러본 후 배 탄지 5분만에 멀어져가는 등대섬이 벌써 아득하다. 매물도는 대매물도, 소매물도, 등대섬의 세 섬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보통 ‘매물도’하면 등대섬을 떠올리는 사람이 아주 많다. 덩치는 제일 작아도 가장 유명하니까…
통영의 경계를 매물도 한참 아래까지 끌고간 국도를 제외하면 매물도가 유인도로서는 통영의 거의 최남단에 있는 섬이다. 그래서 그 남쪽은 끝 모를 망망바다, 아무리 땡겨도 18-55mm 번들렌즈로는 더 이상 가까이 오지않는 섬, 등가도.
소매물도에서 뱃길로 10분이 채 안 걸리는 대매물도는 등대섬이 CF에 나오고, 섬을 지키던 개가 TV에 소개되고, 나라에서 명승으로 지정되는 등의 유명세를 타는 동안 ‘재야의 섬’으로 사람들의 발길에서 비켜나갔다.
대매물도에 사는 경성호 선장님은 대매물도가 절대 등대섬에 뒤지지 않는 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섬 곳곳 이야기에 여념이 없다.
선녀들이 강하해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 우리나라 전역에 선녀탕은 과연 몇 개일까? 웬 션녀들이 산이고 바다고 그리도 많이 내려왔는지…
일제강점기 때 있었던 금광의 입구, 금굴. 물이 나면 굴 안으로 제법 큰 통로가 생긴단다. 혹 지금 들어가면 금 부스러기라도 건질 수 있을려나?
대매물도 동남쪽 끝단, 촛대바위. 선녀탕과 마찬가지로 전국 곳곳 바닷가 바위에는 꼭 있지 아마…
농어목. 농어들이 자주 마실다니는 길목이라 때만 잘 맞으면 대어 몇 수는 쉽게 한다고…
당금마을 입구를 보초처럼 지키고 섰는 매섬은 갈매기들의 휴게소 같았다. 여객선, 낚싯배 들락거릴 때 운좋으면 먹잇감도 쉽게 취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소매물도에서 건너 오는 그 짧은 뱃길에 이렇듯 바위와 굴과 탕과 목과 작은 섬들의 ‘환영’을 받으며 들어선 당금마을은 여지껏 그래왔듯 흘낏 지나쳐가면 먼데 섬 한켠 불편한 ‘촌마을’이고, 시선을 찬찬히 돌리면 참으로 정감있는 동네다.
뒷동산에 오르면 절반쯤 감은 한눈 안에도 쏙 들어올만한 마을이 앙증맞고, 가파른 까꾸막 골목길마다 단체맞춤으로 할인행사를 했는지 온통 주황색인 지붕을 인 채 비슷비슷한 집들 사이로 자꾸만 시선을 잡아끄는 ‘예술품’들이 나타나는데,.
엉성한 듯 숙련된 통일감을 보여주는 이 마을의 각종 안내표지들은 매물도가 ‘가보고 싶은 섬’에 선정된 이후 정부예산을 지원받아 설치된 것이다. 재미있는 표지판 몇 개 설치했을 뿐인데, 가보고 싶은 마음이 슬슬 생기지 않는가?
희한하게 자리를 잡은 바위 밑에 물이 흘러들어 생긴 이 신기한 샘에서 물 긷는 일은 두레박 대신 모터에 연결된 것이 틀림없는 호스로 대체되었지만 여름이면 차고, 겨울이면 따스한 자연의 배려는 여전히 남았다.
한산초등학교 매물도분교는 1963년부터 2005년까지 43년간 대매물도의 당금, 대항 두 마을의 아이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그 때의 아이들이 이제는 이 동네의 제일 어른이 되었다.
폐교된 후 건물은 폐허가 되었지만 운동장 잔디는 오히려 무성히 자라 밟는 느낌이 어찌나 푹신하고 좋은지, 아이들이 맘대로 이 운동장에서 뛰놀게 되면 더 좋겠다는 생각에 한 표.
운동장 너머로 보이는 이 바다 안쪽은 근사한 해수욕장이다.
찾는 이도 적으니 가족끼리 오면 해수욕장 전체를 다 차지한 느낌이 나겠다. 이런 호사가...
장군봉을 오르는 길에서 내집인양 뛰놀던 송아지는 하루 종일 주인 외에는 별로 볼일이 없는 ‘사람’의 출현에 냅다 어미소 품으로 도망이다. 겁내지 말아요, 해치지 않아요…
여름의 파도와 바람을 피해 서쪽언덕에 기대고 있는 당금마을 꼭대기가 내려다 보이고, 학교 운동장은 커다란 쑥떡판을 엎어놓은 듯 하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차례대로 매점손님, 매점앞 통로에서 한담을 바람에 실어보내는 주민, 손님들 반찬해야 한다며 홍합을 손질하는 당금마을 민박집 아주머니.
별 정한 곳없이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중 가장 우려스러웠던 모습.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들이 하릴없이 말라간다. 방제작업을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섬 전역으로 퍼진 재선충의 갈색 흔적은 걸렸다하면 100% ‘사망’하는 소나무들이다. 어떻게 그 몹쓸병이 여기까지 들어왔을까?
산이며 바다며 푸른색 일색인 당금마을에서 생뚱맞게 튈 수도 있었던 주황색 지붕들이 왜 정답게 느껴졌는지는 이 노을을 보며 비로소 알았다.
여름 한철만 해도 수 만 명의 시선이 인근 등대섬으로 향할 때, 이 곳 당금은 조용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아름다움은 전혀 기죽지 않았다. 자연은 인간의 의지와 상관없이 늘 자기 하던 일을 순리에 따라 묵묵히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