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짧은 듯 ‘순한 곳을 보듬던 그 길’이 끝나고 자동차도 다닐만큼 ‘완강한 길’의 초입에 막 피어나는 억새가 반갑다. 모퉁이를 돌면 아까 한산사의 스님이 얘기해 준 ‘추원마을’이 나타나겠지.
추봉도 위쪽(북쪽)에서 아래쪽(남쪽)으로 본 모습과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본 모습. 섬이 이렇듯 두 덩어리가 가늘게 이어져 있음을 예전엔 왜 인식하지 못했을꼬.
추봉도는 한국전쟁(1950.6.25~1953.7.27)에서 유엔군의 포로가 된 공산군을 수용하던 거제 포로수용소가 수용규모를 초과하자 그 중 1만 여명의 악질포로들을 추려내어 이 섬에 격리 수용하게 되었는데, 수용소를 건설하며 섬 거주민들을 강제로 소개하여 집도 절도 없이(더구나 보상도 없이) 쫓겨난 주민들이 전쟁이 끝난 후 다시 입주하였으나 부서진 옛집과 짓밟힌 토지들을 복구하느라 피눈물을 쏟으면서도 어느 누구에게도 하소연하지 못했던 아픈 상처가 있는 섬이다.남쪽과 북쪽에서 바라 본 섬의 모습을 나란히 놓으니 착시처럼 데칼코마니를 보는 듯한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념’으로 갈라진 남과 북이 서로를 죽이는 한국전쟁의 쓰라린 과거가 사진에 오버랩되는 것은 무슨 조화인가.
남과 북을 잇는 가는 능선 위 갈림길에서 좌측은 추원, 우측은 예곡마을이 나란히 앉아있다.
섬 마을에 가면 어디나 학교가 있긴 하지만 어김없이 이런 류의 경고문과 함께 폐교가 되었음을 ‘굳이’ 알리고 있다. 아이들이 없어진 학교 운동장은 어딜가나 잔디와 풀들이 신난 것도 똑같고.
오르락내리락 여러 차례 반복을 하는 동안 그렇게 자주 다니지도 않는 마을버스는 왜 계속 오르막에서 힘들 때만 마주치는지… 그냥 자전거 싣고 버스타고 갈까하는 마음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뒷다리(응?) 힘 다시주고 까꾸막 오르기 신공. 그러나 바싹 마른 목을 거칠게 올라오는 숨은 허걱허걱~~~
오르는 시간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것 같은 시간에 광속의 스피드로 내리달려 닿은 곡용포마을의 끝집. 담벼락에도 대문짝만하게 ‘한산도 땅끝마을’이라 써 놓았네.아, 드디어 끝이다. 참, 돌아가야지. ㅜ.ㅜ;;;
곡용포마을 전경과 ‘한산도 땅끝마을’ 집에서 기르는 개.새.끼.들(응? 절대 욕 아님).
오랜만의 라이딩으로 가장 당황하고 있을 궁둥이를 잠시 쉬게하고 물도 마실겸해서 해안로가 끝나는 지점으로 휴식장소를 정했다. 예상대로 발길이 안닿는 곳이라 맑고 깨끗하다. 지척에 보이는 저 섬은 거제도.
돌아갈 배 시간을 생각해보니 두어시간 남았다. 11시 30분에 출발하여 현재 시각 오후 2시 25분.사진 찍고, 사람들 만나고, 점심 먹고 여기까지 왔으니 두시간이면 한 발로 저어도 가겠다.
오전에 아껴두었던 추봉도 동편의 평평한 해안로를 귀환하는 길로 잡고 슬슬 달리니 다시금 자전거타기의 즐거움이 솟아오른다. 말 그대로 ‘그림’인 바닷가 풍경이 줄을 서고 다가오니 가만히 앉아 미인대회 나온 미녀들을 차례로 보며 심사하는 기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고…
다시 추봉교 위에 섰다. 이 곳에 서서 지는 노을을 넋을 잃고 바라본 적이 있다. 금가루를 뿌린듯 반짝이는 물결 위를 유유히 배가 지나가며 만드는 V자가 아직도 생생하다.
한산도로 돌아오니 바닥을 다 드러냈던 갯벌 굴양식장에 그 새 물이 거의 들어와 같은 곳 다른 그림을 그려놓았다.
“노령산맥을 넘다 잠시 풍륜(風輪, 김훈작가의 자전거 이름)에 기대어 쉬다. 인간의 육신은 그와 함께하는 모든 사물과 정한(情恨)을 나누게 되는가. 긴 여행 끝에 어찌할 수 없이 망가진 풍륜과의 작별. 잘 가거라 나의 풍륜이여, 나의 늙은 연인이여.”
- 김훈의 『자전거여행』 중에서
어찌 ‘풍륜’에 견주겠냐마는 하루동안의 섬 여행을 같이하며 잠깐의 ‘정한’을 나눈 ‘한려수도해상국립공원 관리공단 한산도 사무소의 이름없는 자전거’(아따 길다)에게 무탈의 고마움과 작별의 아쉬움을 남기며 다시 배에 오른다.
추봉도는 조용한 섬이다. 방파제 사이 돌틈을 지나는 바람소리가 크게 들리고, 갈매기와 산새의 속삭임이 크게 들리고, 파도가 포구에 와 닿는 소리가 크게 들릴만큼 조용한 섬이다. 그 섬에 난 길들은 조용함이 태생이라 사람 역시 조용해질 수 밖에 없다. 가을, 한 권의 책도 좋지만 자전거 한대 애인삼아 조용한 사유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몸에도 마음에도 이로울 듯하다.
ㅇ 추봉도에서 만난 사람들
추원마을 강덕년(76)할매. 마을 뒷편 언덕배기의 ‘서숙’(조, 좁쌀) 밭에서 만나다.그리 넓지 않은 밭이었지만 이걸 언제 다 거두어들이나 싶을 정도로 할머니 혼자에게는 넓디넓어 보였다. 부산에 울산에 아들딸들이 있어 어머니 오시라고해도
“그 말라꼬 가낍니까, 언치살끼(얹혀 살 것이) 뻔한데… 요오서(여기서) 내 발로 맘대로 걸어댕기고,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모 망구 자윤데요.” 라고 하셨단다.
“전쟁(한국전쟁) 끝나고 다시 와 보이 집이고 밭이고 다 없어지삐고, 수용소 헐고 그 자리 다 쪼사서(쪼아서) 밭 맨들고, 논이 업신께나(없으니까) 밭에다 서숙 심어서 보리밥에 얹어 뭇는데(먹었는데) 서숙 이거는 그 때도 잘 안물라켔어예.(안 먹으려했어요) 그란데 요새는 서숙이 쌀보다 더 비싸서리 시장 가모 1되 7~8천원합니더.”
건강하시라는 말씀을 남기고 돌아서는 낯선 이가 자식 같았을까. 연신 자전거 조심해서 타라며주의를 주신다.
다 익어 고개를 숙인 조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서 재건의 몸부림을 치던 추봉도 사람들이 허리 한번 못펴고 일하던 모습을 닮았을 지도 모른다.
예곡마을 이장재(80)할배. 예곡마을 폐교 밑에서 만나다.뭔가 다른 두 가지 작물을 심은 듯 다른 색깔의 흙이 경계를 확실히 갈라놓은 밭에서 울타리를 손보고 계시던 할배는
“이리 안하모 노루가 다 뜯어 묵십니더.”“뭐를 심으셨는데예?”“마늘하고 시금치. 마늘은 지금 심어야 내년 봄에 나고, 시금치는 땅이 추지모(젖어있으면) 4~5일에도 올라오는데, 일기예보에 비가 100mm 온다쿠더마는 넨장(젠장) 10mm도 안 오고…”“혼자 사십니꺼?”“아~들은 부산 살고, 할멈은 척추 수술로 해가 부산 병원에 있어서 지금은 혼자 있십니더.”“할머이 구완은 누가 합니꺼?”“부산에 딸하고 아들하고 있어서 즈그들이 하고, 요번 추석에 댕기왔거마는…”
어쩌다 난 상처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아문 듯 보이는 손등의 딱지 때문에 한 층 투박스럽게 보이는 할배의 손은 그러나 망을 맵씨있게 손질하는 섬세함을 가지고 있었다.
ㅇ 추봉도 바이킹 경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