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시장은 새로 생긴 터에 자리잡은 시장이란 뜻으로 일제강점기에 매립한 현재의 자리를 일본에서 귀국한 동포들의 임시주거지로 삼았는데, 이들이 아침 시간대에 장사를 하면서 점차 시장으로 자리잡은 곳이다. 통영에선 가장 오래되고 큰 시장이며 위치가 서호동이라 서호시장이라고도 하고 아침에 서는 장이라 하여 아적제자(아침 저자)라 부르기도 한다.
아침 시장을 보러 온 손님들과 상인들의 출출한 배를 채워주던 시락국, 복국, 해쿨칼국수, 생선매운탕 등 먹거리가 가득한 새터시장은 쇼핑은 물론이고 통영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한 단편을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복잡하게 일정 잡고 시간 맞추고 할 필요 없이 슬슬 걸어만 다녀도 좋은 새터시장투어를 나선다.
새터시장은 바다에서 막 올라온 해산물이 가장 먼저 거래되는 곳이어서 싱싱한 해산물이 많고 오래된 식당과 건어물, 젓갈가게 등이 밀집해 있다. 활어골목인 중앙통로(좌측상단)를 중심으로 해초류, 건어물, 야채류가 모여있는 골목(우측상단), 냉동생선, 말린 생선 등이 많은 골목(좌측하단), 부식, 과일, 생활용품 등이 모여있는 골목(우측하단)들이 격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마음 닿는 대로 이리저리 걸으며 둘러보고 쇼핑하는데 1시간이면 넉넉하다.
그리고 큰 강에 연결된 실개울과도 같은 뒷골목.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공간 일부를 식당으로 쓰기에 사적, 공적 공간이 뒤섞여 있다.
겨울철의 별미 음식으로 각광받는 물메기는 고춧가루를 쓰지 않고 무 숭숭 썰어 소금으로 간하여맑게 끓여내면 그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메기알 역시 된장국에 넣고 끓이면 오도독 알이 터지면서 씹히는 맛이 독특하다.
생선의 귀족이라 할 수 있는 대구는 깊은 바다에 살다가 산란기인 12월~2월에 연안으로 회유하기에 이 때 잡은 대구가 가장 맛이 좋고, 배에 한 가득 들어있는 알은 젓갈로도, 탕 끓일 때 그냥 넣어도, 말려서 얇게 저며 먹어도 좋은 맛과 영양의 보고!!!
‘이집트의 왕처럼 미이라가’ 된 명태(대가리만 남았구나)는 ‘어떤 외롭고 가난한 시인’의 안주가 아니라 국거리용이란다. 대구도 말려놓으면 오래 보관하며 먹을 수 있어 시장 군데군데 대구 말리는 모습은 흔하다.
소주 생각이 절로 나는 맛 중의 맛, 줄도다리(속칭 이시가리)와 자연산 전복.
특별히 정해놓은 데 없는 발걸음이 꼭 방랑하는 집시 같다. 골목 새로 부는 바람에 손이 시려 오는데 마침 눈에 띈 ‘길다방’이 반갑다. 사진 한 컷 양해를 구하자 막 ‘커피배달’을 나서는 길다방 강영숙씨는 차 한잔하고 가라며 기다리란다. 시장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통영지기는 익히 알고 있는 분이지만 그 분은 나를 모르실텐데…
배달 갔다 오시자마자 “무슨 차 드실래요?, 커피? 유자차? 녹차? 새콤한 산수유차 한번 드셔보셔.” 살갑다. 새터시장의 길다방 1호인 강영숙씨는 제주가 고향이고 서울서도 한동안 살아 _통영지기가 듣기엔- 유창한(?) 표준말을 쓰시는데, 30여 년 전부터 남대문, 동대문 등지에서 안해 본 장사가 없지만 길다방을 시작한 이후론 쭈~~욱 이것만 하신단다.
“사람마다 뭐 운명 같은 게 정해져 있는 모양이에요. 이 일로 아이들 공부 다 시키고, 빚 없이 마음 편하고, 나이 들어서도 나와서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느닷없긴 했지만 행복은 일상에 있다는 것을 삶을 통해 정확히 알고 계신 분의 ‘인생철학’이 담긴 말이었다. 말씀대로 새콤한 산수유차와 한 잔 더하라며 타주신 유자차를 건더기까지 맛있게 다 먹으니 가슴까지 훈훈해진다.
손님이 뜸해지는 시간이라야 늦은 식사를 하는 좌판 ‘아지매’들을 보며 통영과 사람들에 대한 단상을 해본다.
통영이 고향인 사람도 아닌 사람도, 좋아서 왔든 어쩔 수 없이 왔든, 고기를 잡든 장사를 하든 그들은 모두 통영이라는 큰 그림의 한 조각들이다. 모자이크에서 한 조각만 빠져도 그림을 완성할 수 없듯, 어느 하나 허투루 도려낼 수 없는 통영의 살점들이다. 똑 같아 보이는 통영그림을 늘 살아있는 모습으로 유지하는 것은 세포와도 같은 그들의 끊임없는 분화과정 일 것이다.
똑같아 보이는 물건들도 통영바다가 기른 이 놈들이 이상하게 더 맛있는 것은 이 곳에 사는 복일터… ㅎㅎㅎ
제수용품 마련은 마트보다 저렴한 전통시장에서 하자는 플래카드의 외침을 마트 가는 사람들이 눈 여겨 보았으면… 사람 냄새 나고, 줄 안 서도 되고, 흥정하고 덤도 보태고, 무엇보다 숨이 살아있는 싱싱한 물건들을 만날 수 있으니 이 정도면 족하지 않을까?
늘 그렇지만 시장을 돌아다닐 땐 별 생각 없이 가는데, 갔다 오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 참 이상타. 마트에서도 백화점에서도 그러진 않은데… 개인적인 느낌이겠지만 이유가 뭐면 어때, 시장이 거기 있으니 가는 거지.
인터넷에서 본 유명한 맛집, 계절 따라 먹어봐야 하는 제철음식들만 찾아서 ‘경제학적 관점’으로 시장에 접근하기보단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마음으로 들어볼 줄 아는 ‘인문학적 관점’으로 시장을 들러보자. 맛난 음식보다 더 오래 가슴에 기억될 ‘기억’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새터시장
김철민
표연히 떠나가고픈 나그네남녘포구엔 작은 파도뱃전에 부서져내 마음마냥 설레가고픈 연인의 땅나폴리 야경 두 눈에 담아
북새판 길목 골목마다아수라장“횟집 아지매도 잘 있나?”“복국집 할매도 여전하실까?”
발걸음 멈춘지느러미 파닥이는 놈와따 크네!
정든 사람들 세상 있음에사랑이 솟구치는 내 가슴그리움 삭이며정녕 또 가고 싶으리!